도시공학과의 꽃은 실습 수업이라고 할 정도로 학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3학점밖에 되지 않는다), 학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게 실습 수업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누구와 같은 팀이 되는지부터 예의주시한다. 당시 교수님들이 공명정대하게도(?) 학번, 전공, 성별 등등을 고려해 팀원을 정해주셨다. 이렇게 교수님들이 정해주는 건 2학년까지이고 3학년 때부터는 잘 맞는 사람들과 실습 팀을 꾸려야 하기 때문에 2학년 때부터 어느 정도 활약을 해야 3학년 때 누군가에게 스카웃되거나 나의 스카웃이 거절당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나는 처음부터 활약을 목표로 하기보다 민폐를 최소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캐드나 스케치업,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은 익숙하지 않았고 PPT도 다룰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첫 주부터 조별 발표가 이어지는데 이들의 현란한 PPT 실력, 나쁘지 않은 발표 실력에 강독 때 빈칸에 들어가는 한자를 넣거나 외운 것을 소리내 읽는 것 말고는 앞에 나가서 발표해본 경험이 거의 없던 나로서는 긴장이 되었다.
다행히 우리 팀원들은 죽이 잘 맞았다. 함께 답사를 가면서, 매일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다 야식을 먹으며 지친 우리는 살기 위해 드립을 쳤고 그 드립에 쉽게 넘어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수업은 초반에는 대상지를 물리적 환경 측면에서, 인구사회적 현황 측면에서 분석한 내용을 발표하다가 점점 이 동네의 비전과 계획 방향을 잡아가는 흐름이다.
마지막 주차가 되어 인구사회학적 측면을 살릴 것인가, 물리적 환경에 포커스를 둘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던 우리는 용감하게도 1인가구를 위한 동네로 컨셉을 잡고 1인가구에게 필요한 소셜다이닝, 택배보관함 등 혼자 사는 1인가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간 속에 담아보려 했다.
최종 발표를 내가 맡았다. 발표자료를 열심히 외우기도 했지만 심사위원 분들께 이 대담한 내용을 납득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쫄지 않고 장악력 있게 발표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사회적 변화와도 잘 맞물려 우리 조는 최종 1등을 했고 우리는 안 그래도 희희낙낙하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자 신이 나서 몇 번의 회식을 했다. 다행히 첫 실습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낸 거다.
우리끼리 마을만들기 공모전을 준비해보자 하다가 방학 때 몇 번 만나고 흐지부지된 채, 다음 학기가 다가왔다. 이번에는 도시설계실습이다. 동네를 다루는 것, 전체 발표자료의 틀 등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지만 한 학기를 지나왔다는 게 달랐다. 전 학기에는 모두가 처음이라 좌충우돌해도 괜찮았다면 이번 학기는 그만큼 성장했음을 보여줘야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건축학과와 합동 스투디오 수업이라 더욱 우리 모두에게 긴장이 되었다. 교수님도 신경이 쓰이셨는지 논리구조와 현황분석, 설계 내용들을 세심하게 살피셨다.
중간발표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했다. 그때도 내가 발표를 맡았는데 순위는 없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내가 떨 것 같았는지 나이가 가장 많아 맏형 같은 존재였던 오빠가 앞에 있는 사람들 다 'ㅈ밥'이라고 생각하고 발표하라고 진지하게 와서 말해주었다. 그 발표에는 나름 회심의 인트로가 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전혀 논리가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 발표 초반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고 그 순간부터 흐름을 잃고 말았다. 또렷이 생각나는 건 전 학기 같은 조였던 사람들이 나에게 괜찮다고 위로해주던 것 (괜찮다는 건 망친 건 맞다는 뜻이다) 정도다.
실습 수업은 중간 발표 때부터 자연스럽게 순위가 가늠된다. 우리 조는 애초부터 큰 기대를 받는 팀은 아니었고, 이후로도 예상을 뒤집지는 못했다. 모두가 수업 사이사이, 저녁마다, 때로는 주말까지 나와 늦게까지 작업했지만 실습 수업에서는 모두가 그렇게 하기에 노력만으로 순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때 얻은 수확이라면 전 학기 단지설계실습에서는 문과생이 잘할 것으로 기대되는 발표와 자료조사 위주로 역할을 맡았다면 이번 학기에는 현황 분석, PPT자료 작성, 판넬 만들기 등 잘 해보지 않았던 것을 맡아보았다는 점이다.
결과는 5등이었다. 6팀 중 5등이라 슬펐고 6등을 한 팀은 3학점짜리 수업에 이렇게 시간을 쓸 수 없다며 구색만 맞추기로 전략을 짠 팀이었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은 우리로서는 아쉬운 결과였다. 다른 조가 더 잘한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결과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나는 이 팀에서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았고 팀원들과도 끝까지 잘 지내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다들 서로 등을 두드리며 고생했다고 말하는데, 그 순간 눈물이 났다. 그 감정이 결과에 대한 서러움이었는지,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사람들이 “OOO 울었대”라고 말했다는 사실만은 또렷이 기억난다. 찌질하게도 울어버린 사람이 되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