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학교에 다녀야 하는 내 사정을 어느 정도 양해해준 기억은 나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학기가 시작됐다.
월요일, 수요일은 학교에 다니고 화, 목, 금, 토요일은 일을 했다.
쉬는 날이 일요일 하루밖에 없었지만 월-금을 일하고 금-일 동네계획을 하겠다는 지금의 나처럼 그때의 나도 쉬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해보기를 선택했던 걸 떠올리니 재밌다.
생각해보면 이런 병행이 가능했던 건 주말 하루는 일을 해야 해서인데 업무 중 공간 대관이 있어 다른 커뮤니티 매니저와 주말 하루씩을 맡게 된 거다. 나로서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경험이다.
떠올리면 단번에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 있는 반면, 어떤 경험은 마음 한 편이 저릿하다. 이 때의 경험은 설렘과 기대로 시작되었던 것과는 달리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아서 고군분투했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순간은 여전히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어느 날, 대표님과 길을 걷다가 어떤 말을 하시길래 '아~' 라고 하고 있었다. 어른들이 말씀하실 때 좀더 진중했으면 좋았겠지만 내 딴에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어 열심히 리액션을 한 거였다. 근데 표정이 굳은 채로 그런 반응은 프로답지 못하다고 여기에 학생으로 온 게 아니니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이해한다. 그 말을 한 마음을 지금은 납득한다. 안 그래도 생각보다 내가 미숙한 데다 여전히 학생 티를 벗지 못하니 한번은 말을 해야겠다 싶어 그때를 빌어 말씀하신 거겠지. 나보다 10살 많았던 대표님은 (그녀를 대표라고 하지 않고 서로의 닉네임을 부르는 게 갓 회사에 온 내게는 더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유명한 컨설팅펌 출신으로 매번 프로로서 최전선에 있다고 생각하며 일해왔을 거다. 특히 같은 여자로서 어떤 모습을 아직 프로답지 않다고 느끼셨을지 이해가 된다.
그래도 어렸던 나는 바로 주의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 뒤로 대표 앞에서 말해야 할 일이 생기면 자연스레 얼어버렸다. 긴장해서 말을 얼버무린다거나 열심히 준비한 것도 자신감 있게 말하지 못했다. 당시의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유일한 오프데이인 일요일, 그리고 오늘 수업시간을 할애해서 카드뉴스를 만들었고 바로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대표님께 온 피드백. 이걸 만든 목적이 뭔지를 모르겠단다.
미치도록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에라이 모르겠다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여기서 물러나면 뭘 할 수 있지, 아무것도 못할 것이다. 이쪽 업계에서 일도 못할 거다.
처음엔 신입이라서, 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나라서 못하는 것 같아서 점점 자존감이 낮아진다. 평상시에 꼼꼼하지 못하고 덤벙대는 내 모습이, 어느 정도로 끝내놓으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내 모습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에게는 더 자신감이 없어지는 내 모습이 다 합쳐져서 대표님이랑 있으면 숨이 콱 막힌다.
일하면서 또 하나 배운 건 일은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은 그냥 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낸 걸 만들어야 하고 성과가 나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 자체로 의미 있었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괜찮았던 학생 때와 달리 제대로 된 걸 도출해야 하는 일은 무게감이 달랐다. 어떤 날이었다. 기획 회의 중이었는데 나름대로 준비를 해간 기획안이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는 개념이었고 이미 끝물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곧 있다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의 등장과 함께 내 아이디어에는 엑스표가 쳐졌다. 학교에서는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획’이어야 했다. 내 것은 조용히 없었던 것이 되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환호가 쏟아질 때 그 차이를 또렷이 배웠다.
인생이 참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이 참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때는 씩씩했는데 자만했는데,
내가 이리 작아져 보잘 것 없습니다
아닙니다
내가 작은 게 아니라 큰 세상을 알게 된 것입니다
- 박노해,「인다라의 구슬」
그렇게 학생은 사회생활이 어떤 것인지를 배워갔다. 부족한 걸 알지만, 알기에 더 노력해보고 싶었는데 회사라는 곳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수습 3개월 후 퇴사 통보를 받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날, 앞에서는 태연한 척했지만 퇴근 길 집에 가면서 많이도 울었다. 부천에서 대학로까지 가는 길이 멀어서 참 힘들었는데 그 날은 눈물이 쉽게 멈추지 않았기에 아직 갈 길이 멀었음에 감사했다.
막학기에 일을 같이 할 수 있다며 신났던 학생은 결국 다른 대안을 알아볼 새도 없이 회사를 나오게 되었지만 이런 배움을 얻었다.
첫째,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일을 하고 있어! 를 지나 일을 한다는 건 어떤 것인지, 어떤 책임감과 어느 정도의 꼼꼼함으로 임해야 하는 것인지를 배웠다. 앞으로도 이것만은 평생 기억해두자며 일기에 써둔 게 있다.
1. 데드라인 무조건 지키기. 신입에게 필요한 것은 get things done이다. 이걸 못하면 그 다음을 기대할 수도 없다. 제일 중요한 것
2. 피드백 주신 사항은 무조건 반영해서 다음엔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기. 처음엔 그렇다 쳐도 다음에도 그러면 내 신뢰감은 훅 떨어진다.
3. 내가 회사를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기. 오타 하나, 로고 하나에도 꼼꼼히 신경 쓰자. 내가 했던 누가 했던 간에 회사 이름으로 나간다 .
둘째, 소셜벤처에서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이 곳은 단지 일만 잘하면 되는 곳이 아니라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도 있는 곳이다. 나는 그것에 취해 '저 이런 일을 한답니다!'에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들어가보니 안에서는 그냥 일을 잘해야 하는 곳이었고 결과로서 사회적 가치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두 개 다 잘해야 했다. 그때 생각했다. 일을 잘하게 되고 나서 다시 소셜벤처로 오자. 지금은 한명이 일당백이 되어야 하는 스타트업이자 소셜벤처이기까지 한 이 곳을 감당하기에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 다시 정규직으로 일을 한 지 5년이 넘는 지금 시점에도 그래서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내가 일을 잘하게 되었는지는 물음표지만 그때의 그 결의는 내 마음 한 켠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어떤 분의 말이 있다.
당시 나는 회사도 좋았지만 함께 일하는 분들을 참 좋아라 했는데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때로는 그만두는 데에 외부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나는 속앓이를 하면서도 먼저 그만두지는 못했을 사람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 '외부의 힘'이 오히려 감사하게 느껴진다. 위축된 채로 머무르는 대신, 나를 발산할 수 있는 다른 일과 나를 더 잘 쓰는 방법을 다시 찾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의 나는 그렇게 친구들이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던 9~11월을 날리고 다시 무엇이든 시작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었다. 당시에는 취업의 경로가 스타트업 아니면 대기업뿐이라고 생각했고, 하나는 나오게 되었고 하나는 시기를 놓친 상태였다. 막막했다.
그때의 나는 짐작조차 못했다. 이 때의 실패가 나를 도시공학에 더 단단히 발붙일 수 있게 도와줬다는 걸. 여전히 내 일을 사랑하며 일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바로 이 때의 '문닫힘'이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