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담배가 우선인 그가 주인공인 이유
길가에 서서 도로 위 자동차들을 바라보면 전부 다른 생김새다. 차종, 크기, 색상, 타이어의 결, 번호판까지. 세상에 완벽히 똑같은 자동차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옆 차선의 차주에게 "SUV는 검은색이어야 해요. 파란색은 너무 요란한 것 같네요"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랬다가는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며 언성이 높아질지도 모른다. 영화 <소공녀>는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봐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하는 작품이다.
지금 당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말해보라면,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많은 이들이 두 가지도 채 말하지 못하고 고뇌에 빠질 것이며, 은연중에 내뱉어지는 답들은 천편일률적일 것이다. 가족이나 연인 혹은 돈과 명예.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한 삶'을 묘사하는 요소들이다. 우리는 마치 통일된 이상을 벗어나면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평범하고자 노력한다. 평범함을 성취해야 한다니, 웃긴 말이다.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는 평범을 성취하려 하지도, 성취한 이들을 부러워하지도 않는 인물이다. 위스키, 담배, 애인 세 가지면 집이 없어도 좋다는 주인공이라니. 쉬이 몰입할 수 없는 설정이다. 담배값과 월세가 올라 생활고에 시달릴 위기에도 둘 중 집을 포기해 버리는 인물에게 어느 누가 공감할 수 있을까.
응당 감정이입이 쉬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편이 관객으로 하여금 서사를 잘 따르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보며, 미소에게 '집도 없이 떠돌면서 술담배가 제일 좋다는 너 정말 한심하다'는 친구의 말에 내심 후련함을 느끼는 이유이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될수록 현실-비현실, 정상-비정상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으며 현실을 혹사시키는, 이상만을 좇는 사람들이 정상일까? 그것들이 절대적인 행복의 조건일까? 누구도 대답할 수 없다.
나에게 위스키, 담배, 애인과 같은 존재는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것도 영화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혹은 주변인 중 '미소'에 대입해 볼 만한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유의미한 감상법이다.
가수 '샤이니'의 멤버 키가 자신의 오랜 친구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끔 술 한 병 사들고 집에 놀러 가면 언제 사다 뒀는지 모를, 다 물러버린 체리를 꺼내온다"는 그 친구는, 한 사람이 온전히 누우면 그만인 집에 산다. 그런 친구가 유일하게 지극정성인 대상은 반려견이다. 본인 입에 들어가는 것도, 오랜 친구의 방문을 반기는 것도 크게 중요치 않은 사람이지만 강아지에게는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키는 그에 대해 "저는 이런 제 친구가 참 좋아요"라며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었다. '너는 왜 다 썩어가는 체리를 여태 보관하고 있느냐' 혹은 '강아지 말고 너부터 챙겨야지'라고 말하지 않는 것. 딱 이 정도의 관망이 타인을 바라보기 적당한 온도이다.
<소공녀>는 강력한 메시지가 없는 것이 곧 메시지인 영화이다. 결코 사회가 규정한 성공의 기준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주입된 성공가도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테니 단정 짓지 않는다. 다만, 자기만의 가도를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자고 이야기한다. 곧게 뻗은 포장도로가 어울리는 차가 있다면,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값진 차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포장도로 위의 운전자가 굳이 비포장도로 운전자에게 '그렇게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다 타이어에 펑크라도 나면 어쩌려고요?' 하는 오지랖은 거둬달라는 말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배척하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메시지. 누군가가 살아가는 방식과 그의 소신이 한심해 보이고 이해가 안 되어도,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