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했다. 엄마는 나에게 "살아. 그냥 살아. 네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그냥 살아."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을 것이고, 남들과 비교하지도 않을 테니, 뭘 하든 죽지 말고 살으라고.
초등학생 때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고2 때 갑자기 미술학원 다니기 시작하는 친구를 보며, 너무 부러워서 고3 때 엄마에게 미술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었다. 엄마는 이제 와서 갑자기 무슨 미술이냐고, 다른 애들과 어떻게 경쟁할 것이냐고 하셨었다. 가슴속에선 항상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20대 초반에 피아노를 다시 배워볼까 싶기도 했고, 대학교에서 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가 볼까 싶기도 했다. 20대 중후반에는 직장인 연극동호회라도 들어볼까 싶었다. 30대 초반에는 노래를 배워보았다. 그리고 30대 중반부터 유화를 배우기 시작하고,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
고민과 소심한 시도의 연속으로 이제는 거의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방황하고 또 방황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착한 곳이 없다. 20대 후반에 친구의 친구가 극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부러웠지만 차마 용기 내지 못했다.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0대 이후에 만난 사람들 중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분들이 춤추는 일, 연출 등으로 진로를 바꾸는 것을 보며, 그 안에 타오르는 무언가는 나이가 들어도 꺼지지 않나 보다 생각했다.
용감한 사람들의 선택들을 보며 부러웠지만, 나의 이야기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무기력의 끝을 달리다 보니 사는 것 자체가 괴로운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유는 무얼까? 타인의 시선, 비교로 선택한 삶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택한 사업 아이템조차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나와 맞지 않은 선택이었다.
작년에 퇴사한 후로 어디론가 계속 떠내려가는 느낌이다. 기업에 따른 전략제안서를 써도 이직이 되지 않은 것 보면. 그리고 정작 사업 준비할 때는 헤드헌터들에게 제안이 엄청 왔었고. 막상 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계를 위해 회사도 다니긴 해야 할 것 같은 지금 시점에는 헤드헌터 연락이 뚝 끊기고, 지원해도 전혀 연락 없고.
의지와 계획대로는 결코 돌아가지 않는 쳇바퀴 같은 시기. 분명 어디론가 가고는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몰라 답답함과 동시에 무기력의 농도가 짙어지고 있었다. 살기 싫어졌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이 한창 중이고, 무방비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영혼들도 가득한데, 정작 나는 누구도 쏘지 않은 총알에 스스로 몸을 갖다 대고 있었다.
현재 상황에 대한 원인을 파헤쳐가다 보면, 나는 금세 뿌리까지 내려가 존재를 부정하곤 한다. 너무나도 다른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서 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주어온 자식임에 틀림없어.'라고 믿어 온 날들. 술 마시고 가족들을 모두 소환하여 매번 나에게 "아빠가 너를 편애하는 것 같니? 너만 보면 앞이 깜깜하고 답답하다. 너가 문제야."라고 말씀하셨던 아빠의 모습.
고등학교 입학식 전,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된 기숙사 생활. 매일 아침 6시 20분부터 밤 11시 20분까지 자습과 튜터수업을 해야 했고, 핸드폰 압수에, 2주에 1번 토요일 오후 5시 20분이 되어서야 집에 갈 수 있었고 일요일 하루를 보내고 다시 복귀해야 했던 감옥 같았던 생활. 내가 얼마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였는지 깨닫게 해 준 시간.
삶의 모든 기준은 '언니 보다 나은 사람'이었다. 언니가 30대 초반에 공무원이 되면서 아주 잠깐 언니보다 연봉이 높아졌던 시절. 외국계 기업에 다니면서 프라이드도 높아지고 연봉도 높았던 나름 인생의 성공기를 누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퇴사하고 진로 방황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스트레스' 보다 한 차원 더 높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의 연속을 지냈다.
나를 '어느 정도로'만 아는 사람들은, 제발 진득허니 회사 좀 다니라고 했다. 퇴사하고 나서야, 그 회사들이 얼마나 좋은 회사였는지 깨달았고, 계약직이더라도 아무나 갈 수 있는 회사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례 외국계는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좋은 편이었어서 그걸 보고 계약직으로 간 경우도 있었다. 연봉 높이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최소 10% 올려주려고 했던 상사들을 만났었기 때문에.
그들은 연봉을 올려주면 내가 가진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더 이상 붙잡지 못하도록 더 높은 연봉과 근로조건을 부르곤 했다. 나는 계속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떠날 때마다 남은 건 '후회' 뿐이었다. '다음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했을 땐 한참 늦었었다. 그리고 현재는 갈 곳이 없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 물론 얼마 전까지 불러준 전 직장이 있었지만, 이번에도 나는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은 상태다.
방황의 끝에선 무엇을 보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10년 후에도 지금과 똑같은 방황을 하는 중이라면, 못 견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선택하기로 했다. 이번엔 '진짜 자유'를. 누구에 의한 선택도 아니고, 어떤 비교에 의한 선택도 아닌, 그동안 갈망해 왔던 그것을 하기로.
하루하루를 괴로움에 살며 무기력에 덮쳐 죽고 싶은 삶을 살기보다, 오늘 하루 행복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며 하루를 지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하기 싫은 일들은 하지 않기로.
이상하게, 이런 마음을 먹으니 하기 싫었던 일도 할 수 있는 힘을 회복하는 느낌이었다. 무기력의 원인은 인생의 주도성을 모두 잃었다고 여겼기 때문 아니었을까. 마음 한켠에는 무거움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만 하다가, 정말 말 그대로 '그지(Begger)가 되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도 쫓겨나면 어쩌지? 회생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떨어지면 어쩌지?
그런데 결과는 동일했다. 매일 괴로움에 살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되는 것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미루게 되는 것. 오늘 해야 할 일들 때문에 괴로워해도 나는 오늘 수입이 없고, 오늘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즐거워해도 나는 오늘 수입이 없다. 이런 단순하고도 모순적인 논리.
지난 몇 년 동안은 회사 출근 전 1시간 정도씩 매일 독서하고, 퇴근하고 운동하는 삶을 살며 빠르게 성공하고 싶어서 누가 봐도 '갓생' 같은 삶을 살았었는데, 결과는 '이렇다'. 그때의 시간들이 모두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을 거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선택들도 사실은 '남의 눈'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난 예술 관련 일을 하고 싶어."
"어떤 일?"
"모르겠어. 그냥 뭐든 예술 관련 일이면 좋겠어."
"그래. 그게 뭐든, 그냥 해. 그리고 살아. 그렇게 살아."
엄마에게 한참 원망을 퍼붓고, 나온 결론이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사과드렸다. 고맙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도 살아. 나 엄마까지 없으면 진짜 죽어."
"응 엄마도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 느낌이었다. 그동안 나는 너무 괴로웠다. 내 안에는 다른 것이 꿈틀대고 있는데 이걸 그대로 방출할 수 있는 환경에 살지 못하니 매번 괴롭고 버거웠다. 이제는 이 친구를 그냥 있는 그대로 꺼내줄 시간이 온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혼자인 이유가 이것이었나 싶기도 했다.
몇 년 전 만났던 전남친은 나랑 결혼하겠다고 배우를 접고 호신술 센터를 오픈했었다.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가정을 이루었지만!) 그의 곁에서 '배우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명확하게 보았음에도 나는 기어코 이 길을 가려고 한다. 다행히 나는 '혼자'여서. 그래서 갈 수 있는 길.
내가 진짜 '배우'가 될런지, 아니면 그저 글이나 쓰고, 그림이나 그리고 말지. 아니면 운동을 빡세게 해서 운동하는 사람이 될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1가지 분명한 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가며 인생의 제2막을 살아볼까 한다. 다행히 '혼자'여서. 하고 싶은 대로, 하루 벌어 하루 살더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채우며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의 눈에는 멋져 보이는 '나'여도, 끊임없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완벽해지기 위해 부족함을 메꾸고 채우기 바빴던 지난 시간들. 그것들에 대한 명확한 원인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내가 아니라, 되어야만 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낮은 자존감. 내가 연애를 쉬며, 누군가를 찾아 헤맬 때마다 그들이 나에게 했던 말.
"자존감을 높여."
정말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다. 내 자존감이 뭐 어때서? 너네가 내 소개팅 상대로 나왔더라도, 나는 너 같은 사람은 만나지도 않을 건데? 라면서 어떻게든 긁힌 자존을 회복하기 위해 속으로 칼을 갈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내가 자존감이 낮았던 이유는, 내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란 걸.
온전히 '내'가 하는 선택들을 하며, 온전히 책임지는 시간들을 보내겠노라. 이제는 다짐한다. 이제는 살아내기로. 인생 2막, 다시 시작해 보자. 내가 원하는 것들로.
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작은 외숙모가 말씀하셨다. "아빠가 너희에게 선물을 주고 가신 거야." 이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선물이지?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선물이라는 거지? 원망을 쏟아부어도 내 안에 불타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선물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가 없기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야심 차게 갔던 호주 워킹홀리데이에서 비행기 티켓 예약/취소를 2-3번 반복했던 것처럼 그의 기준대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 이제는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까.
매일의 작은 선택들이 모여 이룬다는 인생. 만족할 만한 선택들로, 살아가겠습니다. 살아내 보겠습니다. 무엇이 될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오늘을 살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