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회사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모습으로

by 자기 고용자

이렇게 봄기운이 만연한 날에는 그저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만 진다. 아침 느지막이 무거운 몸을 일으켜서 괜신히 그림 그리러 갔다. 오늘은 30분이나 늦어버렸네. 그래도 2시간 동안 에너지를 한껏 뺐다고 생각했다. 화실이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햇볕은 "나야, 봄."이라고 말하는 듯 따수웠다. 그렇게 김밥집으로 향했다.


김밥 한 줄 때리고, 카페에서 잠깐 일하고 저녁 약속 장소로 이동해야지 싶었는데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오는 길에 보았던 벚꽃망울들이 눈에 밟혀서. 이 벚꽃을 뒤로하고 다다음주부터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그렇다. 지난주 얼결에 입사지원서를 넣었고, 만 일주일 동안 3번의 인터뷰 끝에 어제 최종합격 소식을 받았다.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현실 앞에서 다시 무릎 꿇고 회사로 돌아간다. 다행히 이번 회사는 그동안 바라왔던 조건들이 거의 90% 이상 충족되었다. 1가지 걸리는 건, 자유다. 이런 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못할 자유를 침범당한다. 사실 직장인들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을 자유였다. 그러니까, 원래는 없었던, 존재하지 않았던 자유다.


1년을 그렇게 자유롭게 지내다가, 이제 평일에 카페를 자유롭게 가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숨이 턱턱 막혔었다. 이런 단순한 이유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맞을까를 며칠 동안 고민했다. 그런데 어쩌겠나,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해야 당장 수입이 생기는 걸. 내 시간을 갈아야 수입이 생기는 것, 그것이 노동의 값인걸. 어쩌겠어.


이번 회사는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성과중심 문화가 가득해서 커미션을 무한으로 가져갈 수 있다. 내가 잘하기만 하면. 그래서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편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런 환경을 원하지 않았던가. 매일의 성장을 이루고, 누군가 규정한 나의 한계를 넘고 싶은 마음에. 나도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것이 이번에는 사업으로 실현되길 바랐건만. 현실 앞에 굴복했다. 감사하게도 내가 사업을 개시했던 것, 그리고 이전 이력이 화려(?)했던 걸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물론, 면접 말미에는 "오랫동안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라고 우려의 말씀을 몇 번이고 덧붙이셨지만!




욕심이 너무 많아서 현재의 상황만 유지해도 괜찮은 보통의 회사들에선 부담스러운 유형의 사람. 나는 자꾸만 앞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아니, 위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그게 단순히 감투를 쓰고 싶어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나는 무언가 이루고 싶어 한다. 그것도 알맹이가 꽉 차도록. 그래야 진짜라고 여기게 되니깐. 늘 비어있는 느낌인 것인지, 아니면 내 안에 매일 뜨겁게 달구어진 어떤 것을 빼내기 위한 작업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를 좀 갈고닦아 그 형체의 아웃라인이라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




최종합격 후, 레퍼런스 체크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도 전 직장 2곳에서의 직속상사에게. 한 분은 바로 직전 회사 대표님으로 적었다. 대표님께 연락을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웬일로 먼저 연락드리니 일자리를 구한다고 생각하셨을까? 이전에 하려던 AI 프로젝트 맡길 사람을 찾았다며 나보고 그걸 같이 하라고 연락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저 이제 대표님이랑 같이 일할 일 없다고 말씀드렸잖아요."라고 대차게 말씀드리니, "아,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미 대답을 들어버렸네."라고 하신다. 순간 '대표님은 정말 그날 내가 얼마나 상심했는지 모르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대표님께 레퍼런스 체크 부탁을 드리니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마음이 이미 많이 상하신 느낌이었다. 조만간 식사하러 가겠다고, 저에 대해 오해하신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했더니 오해 안 한다고 하셨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시면서...


이번에 행사 사회를 보기까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있었고 최대한 당신과 회사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했었는지, 당신은 전혀 모르시면서... 그래서 더욱 결정이 힘들었고 마침내 내린 결정이라 내게는 너무나도 무거웠는데, 그날 하루로 그 시간과 노력들이 모두 날아갔다는 걸 전혀 모르시면서...


그렇게까지 생각할 것이었나란 허탈함으로 이제 다시는 그 곁에 있지 않겠노라 다짐한 걸, 전혀 모르시면서... 사실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굳이 그분께 레퍼런스 체크를 부탁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부탁드린 이유는, 나는 이제 정말 떠났다고 간접적으로라도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었고, 소심한 복수(?)를 행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받은 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도 당신을 살짝이라도 건드릴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ㅎㅎㅎ


(어머, 써놓고 보니 이렇게나 유치하다고? ㅎㅎㅎ)




그리고 다른 한 분으로는 전전직장 부사장님께 레퍼런스 체크를 부탁드렸다. 연령대도 비슷하시고 직급도 비슷(?)하신데... 일처리 방식이 전혀 달라 사실 약간 놀랐다. 부사장님께는 뭔지 모를 세련미가 묻어났다. 글로벌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하신 게 묻어난 걸까? 부사장님도, 대표님도 대접받고자 하는 그런 권위의식을 멀리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라 생각했기에 두 분 다 좋아했고, 조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분을 어려워했지만, 나는 편하게 대해드릴 수 있었다.


부사장님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영업 베이스에서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올라간 분이었고, 대표님은 대기업에서 3년 정도 근무하시다 바로 창업하신 공대출신이셔서 그런가? 부사장님은 친근하면서도 결코 선을 넘지 않는 깔끔함이 있으셨다. 내가 입사할 회사를 말씀드리니, 직접 서칭 하셨고, 어느 나라 회사인지, 어떤 직무를 하는지 등을 물으셨고, 어떻게 말해주면 나에게 좋은 지도 물으셨다. 이것저것 물어봐주시는데 당시 전화받을 상황이 아니어서 지금 통화가 좀 힘들다고 말씀드리니, "그러면 내가 알아서 잘 말할게."라고 해주셨다.


반면, 대표님은 "어, 어, 어. 알았어. 해드릴게요." 끝. 본인은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려다 거절당한 마음에 기분이 상하셔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일을 대하실 때 특정한 형태 없이 뭉개버리신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이가 어떻게든 형태를 만들어야 했고,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으실 땐 구체적인 디렉션 없이 그게 아니라고만 하셨다. 수수께끼 같은 업무처리 방식.


당연, 개인의 성향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만약 회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셨다면 그 성향이 일관되지 않았을 확률도 높아진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직원들이 알아서 센스 있게 일해주길 바라시지만, 디렉션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그게 얼마나 곤욕인지 모르실 거다. 그렇다고 부사장님은 매번 명확했냐,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제 느낀 극명한 차이는, 정말 사소하지만 나에겐 왠지 앞으로 일할 때 가져가야 할 태도가 될 것이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이걸 잘 파해쳐보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친근하지만 넘어가지 말아야 할 선을 명확히 지키면서 깔끔하고 젠틀한 모습으로. 앞으로 세일즈를 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부사장님처럼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필요한 자질일 테니까. 어디에서든 필요할 테니까.




진짜, 나도 참 피곤하게 산다. 이 한 가지 이슈로 이렇게나 다양한 생각을 오랫동안 할 일이냐구. 그런데 어떡하겠냐. 나란 사람이 이런 사람인 걸. 참나... ㅋㅋㅋ 어쩌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사업. 사업이라고 하기엔 취미활동 보다도 더 적은 수입을 가져다주는 일이지만, 이 일을 어떻게든 함께 가져가고 싶다. 솔직히, 아이템이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이템을 내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들도 바꾸고 싶다. 내가 그린 그림들을 굿즈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싶다.


현재 그리는 유화를 완성한 후에는 오일파스텔을 배워볼 것이다. 오일파스텔은 상대적으로 속도감 있게 작품들을 완성할 수 있으면서 굿즈로 판매하기엔 좀 더 감각적이니까. 굿즈들을 만들어 판매하기엔 재고부담이 따라오지만, 1-2개 정도로 작게 시작해서 판매되면 좋겠다.


그렇다.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려고. 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이번 주에 홍철책방 3번이나 갔다 왔다. 어제는 다른 친구를 데리고 함께 갔는데, 일하는 분이 나보고 매일 오신다고 서비스를 주셨다. 친구가 나보고, "매일 왔어???"라고 되물어서 너무 민망했다. 매일은 아니었는데... 누가 보면 아르바이트생 보러 매일 온 줄... 그저 나는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는 말을 내 가슴에 심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입사하면 이제 평일에는 자유롭게 못 올 것 같으니까 미리 온 건데...


아무쪼록... 이렇게라도 심고 싶다. 회사에 들어간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며, 하고 싶은 것도 포기 못하고, 욕심도 포기 못할 테니까. 그냥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 거다. 노홍철처럼 가볍게. 그렇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응원해 주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거다.


내 인생. 한번뿐이다. 그래서 나를 가장 사랑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면서 스스로에게 매일 조금씩이라도 물을 주는 것이란 걸, 이제는 안다. 회사를 가더라도, 나에게 물을 주는 일 멈추지 않길. 나를 사랑하는 일, 나를 찾는 일, 멈추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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