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으로서의 마지막 한주가 거의 다 흘러갔다. 이번 주말만 지나면 첫 출근이다. 다시, 출근.
인생을 돌아보면 '절대'란 없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는다. 돌이켜보면 항상 민망함만 남는다. 그때는 변함없을 거라고 확신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를 갖는다. 변화 없는 삶은 지루하다고 여겨서일까? 어떻게든 변화를 끼얹어 단조로움을 깨트린다. 그렇게 다시는 돌아가지 않겠다던 회사로 돌아간다. 민망하게.
이번 주에는 어른들을 만났다. 그래봐야 두 분이네? 오늘 두 탕을 뛰려 했는데 한 분은 장례식장에 가셔야 한다고 해서 당일 취소되고, 지난주 금요일에 전전직장 팀장님 만났던 것을 포함하면, 그래도 세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 오늘 전 직장 대표님 만난 김에 연구소 소장님까지 만나 뵌 것까지 네 분?
그리고 주중에 서촌에서 점심을 먹다가 네덜란드에서 여행 온 40-50대 관광객 4명을 만났다. 처음에는 부부동반 여행을 하시나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행모임에서 만나 5년째 함께 여행 다닌다고 한다. 대신 사진 찍어주겠다고 오지랖 부리면서, 그 이후에도 자꾸 눈이 마주쳐서 결국 "이 식당은 어떻게 찾았어요?"라고 질문하게 되었다.
4명 중 한 명은 존슨 앤 존슨에서 일한다고 해서, 예전에 거기 인터뷰 보러 갔다가 떨어졌다고 너스레 떨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분은 동화책 디자이너였고, 한 분은 사회복지사였고, 한 분은 내가 다음 주부터 일하는 것처럼 세일즈라고 하셨다.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마냥 신나고 재미있어서 조용했던 식당이 떠들썩거렸다. 그래서 사장님께 경고받았다. ㅋㅋㅋㅋ 티벳커리 식당이어서 처음 식당에 들어섰을 때의 한적한 분위기가 나로 인해 와장창창 깨져버렸다.
대화 초반에 가이드가 있느냐고 내가 물었을 때는 경계하는 듯했는데, 나중에 식당을 떠나려 하니 되려 나에게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저녁시간에 다시 만났다. 삼겹살 먹고 싶다고 해서 이전에 맛있게 먹었던 식당에서 만났다. 정신없이 양옆으로 2개 테이블을 커버하며 삼겹살을 구워 먹고 인생네컷을 찍고, 청계천을 따라 광화문 광장까지 걸어왔다.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외국인들을 만날 때면 이놈의 애국심이 더 생긴다. 짧은 시간을 보내더라도 한국을 따뜻한 나라로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것저것 더 챙겨주게 된다. 지인들에게도 이놈의 오지랖을 가만 넣어두지 못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말 다했지 뭐. 인생네컷은 기념품이라며 내가 직접 돈을 지불하며 한 장씩 건네주었는데 그게 또 크게 한방 했던 것 같다. 나보고 회사 못 다니게 되면 가이드하면 되겠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에 네덜란드 오면 그때는 자신들이 가이드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오늘은 이전에 새로운 법인 출범식 행사 이후로 처음으로 대표님을 만났다. 점심식사 후 카페에서 지난 시간에 대한 긴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그날 왜 그렇게까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는지, 작년부터 시작된 내적변화들과 이번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렸다. 솔직히 대표님께서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실 이유는 없다. 내가 뭐라고. 그리고 대표님께서도 중간중간 자신의 실수가 의도한 것은 아니라며 변명(?)들을 말씀하셨는데, 나는 앞으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거라고 했다. (나도 참... 성격이 정말 ㅈㄹ 맞다.)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게 되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온다. 그게 정말 상대를 아는 것이고, 알면 상대가 어떤 실수를 하든 잘못을 하든 상관없다. 그냥 다 이해가 되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나는 아직 대표님을 잘 모르나 보다. 그리고 대표님 또한 나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설명해야만 했다. 나의 정당성을. 어떻게든 밝혀내고 인정받고 싶었다. "She is innocent!" 이 말이 듣고 싶었는지도!
항상,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나면 후회가 스멀스멀 밀려온다. 그 이유는, 그것은 감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흘려보내면 될 것이었기 때문에 굳이 밖으로 꺼내지 않아도 되었던 것 같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괜찮았다면 굳이 쏟아내지 않아도 될 감정 따위. '그렇다면, 다음번엔 넌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똑같이 감정을 쏟아낼 것이다. 아직은 그 쪼그마한 그릇으로 세상을 벅차게 살아내고 있으니까. 물은 넘쳐서 흐를 수밖에 없다.
내가 뭐라고. 진짜 내가 뭐라고 이번에도 대표님은 일하다가 6개월 후에, 1년 후에, 2년 후에, 다시 함께 일하자고 하신다. 그때는 미국 법인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니, 미국에서 일하라고. 그럼 대체 나는 언제 결혼하냐고... 내 인생에 정말 결혼은 없는 팔자인가? 뭐, 돈만 많으면 안 해도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심 아쉽다. 내가 20대 초반에 너무 빨리 결혼할까 봐 너무 걱정했다던 엄마는 여태 결혼하지 않은 나를 보며 "괜한 걱정을 했다."라고 하셨는데... 나도 동의한다. 일하는 걸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나는 결국 일과 결혼할 운명이었는지도.
아무쪼록... 감사한 일이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게. 그리고 나의 가능성을 인정해 주는 분이 계신다는 게. 아무도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았었는데... 그저 스치는 들꽃에 지나지 않는 그런 존재였는데...
홍철카페에서 카드를 긁고 나면, '너 커서 뭐 될래 했는데 뭐가 된 노홍철 다'라는 가맹점 이름이 뜬다. 난 아직도 그 물음을 가지고 산다. '너 커서 뭐 될래?' 가슴 아프게 찔린다. 아직도 성장기다. 좌충우돌. 여기저기 치인다. 아니, 스스로 머리를 갖다 박아댄다. 그렇게 난 아직도 미숙해서 대표님 앞에서 뭐가 된 것 마냥 막말을 하며 그 순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민망함을 안고 메시지를 보낸다.
말이 문제다. 언제나.
뭐가 된 것 마냥 말하는 가벼운 말.
한참 멀었다. 그래서 여전히 가지지 못하는 것들이 있나 보다.
배우자.
돈.
내 그릇이 한참 작아서 아직도 가지지 못하나 보다.
나 자신조차도.
너무 작아서 보일 듯 말 듯,
여전히 보이지 않나 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는
바늘귀 같아서 찾기 힘든가 보다.
휴.
어쩌면 좋죠 저는?
그렇게 작습니다.
그렇게 커갑니다.
아주 작게.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