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이다!”
일탈은 언제나 신난다. 학창 시절 조용한 범생이었던 터라 더 신나 한다. 그래서 우리의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탈행위이자 길에서의 이탈, 도망이었던 북부 바스크 여행은 휴식기간이자 특별한 감상을 남겼다.
순례길이 힘들긴 했어도, 뜬금없던 일탈은 아니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실은 ‘가스텔루가체’라는 곳을 향한 여정이었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 그녀가 유일하게 가고 싶다고 내게 말했던 색다른 여행지였다. 왕좌의 게임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그녀는, SNS에서 우연히 저곳이 드라마 촬영지란 걸 알게 되어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럼 가지 모.“
그리고 가면 좋지-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찍어놓았던 장소였는데, 산티아고 순례길과는 멀리 떨어진 장소라 가는 게 참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산티아고 순례길 첫 주부터 허리디스크로 매우 힘들었던 그녀에게 ’요양‘이란 의미로 설득하여 경로를 바꾸게 되었다. 만약 순례길을 끝까지 걸어야 했다면, 갈 수 있었을지는 지금 생각해도 미지수. 가장 좋은 타이밍에 순례길을 도망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빌바오 - 가스텔루가체 - 산세바스티안’이라는 스페인 북부 해안을 타는 여정을 출발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북부를 바스크 지방이라 부르고, 빌바오와 산세바스티안(도노스티아)는 북쪽 지방에서 주요 거점 도시였다. 스페인은 지방별로 구분이 명확했는데, 언어 차이도 있어 같은 도시조차 부르는 명칭이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두 이름으로 불리는 산세바스티안(도노스티아)이 헷갈려 두 이름 모두 번갈아 쓰곤 했다.
이처럼 지방 간의 차이는 실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갈 때도 느낄 수 있다. 800km의 워낙 긴 길이라, 지방마다 특색과 대표 요리도 다르고, 사람들의 생김새부터 분위기도 다르다. 세심하게 살펴보면, 처음 출발할 때 순례길 화살표와 끝날 때쯤 화살표 디자인에서 조차 차이가 있으니, 이러한 차이들은 스페인 여행 중 살펴볼 수 있는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스페인 내에서 휴양지로 유명한 도시 산 세바스티안. 그러나 한국인들이 찾는 장소는 아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후기는 많았어도, 스페인 북부에 관한 여행정보는 많지 않았던 터라 그 루트를 하나하나 우리가 직접 찾아 나서야 했다.
일탈 여행의 묘미였다랄까. 아무 정보도 없던 미지의 장소를 향해가는 길은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었다. 그래서 이동할 때마다 몸으로 부딪히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며 찾아가야 했지만, 그만큼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의외의 여행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그런 의외의 기회들에서 찾아오는 또 다른 여정,
낯설지만 풋풋한, 기분 좋은 기억들.
스페인 북부여행은 그랬다.
나라면 오지 않았을 장소를 오게 된다는 게,
그녀가 이끌지 않았다면,
아마 내 인생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도착도 볼 수도 없었을 광경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감정이 들었던 때였다.
그녀가 훌쩍거렸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모르겠다고 답했다.
빨리 가야 할 것 같아서 답답했다고 한다.
어서 목표했던 그곳을 도착하고 싶은데, 더 걷고 싶은데
아파서 그게 잘 안 돼서, 스스로에게 화가 났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는 길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고.
그런데 와보니 너무 좋더란다.
도착하고 보니 너무 아름다워서, 평화롭고 고요해서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모질었는지,
미안했다고 말했다.
불안이 녹아내렸다고,
그렇게 말했다.
이 여행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가 ‘정도’라 떠올리는 정해진 그 길에서 벗어나보는 게 또 새로운 감상을 주지 않을까?
산티아고 성당을 보기 위해 끝까지 달려보는 것도 좋다, 우리가 목표한 그 마지막에 도달하는 것도 너무 좋다.
그러나 우리가 가려는 길 말고도,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길은 다양해서, 우리가 만들어 가는 우리만의 길만으로도 또 다른 행복을 줄지 모르겠다.
가끔은 이때를 떠올리며,
‘이탈‘을 너그럽게 바라봤다.
만약 지금이 너무 힘들거나, 지쳐있다면
조금 쉬어가도 좋고, 또 한 번 용기 내어
다른 길로 가보아도 좋겠다.
행복하고 싶은 마음에
지금의 행복을 멈춘다는 모순,
언제 들어도 슬픈 말이라 생각해서.
행복하고 싶은 그 마음을 가진 우리는
또 다른 곳에서도 행복을 잘 찾아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내게 있어, 산티아고 성당을 도착했던 그 순간보다도
너그러운 바다가 나타난 이 날의 고요했던 여행이 내겐 더 깊이 여운으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