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네 번째 직장, 한 달째

3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이야기

by 듀이

1. 왜 쓰게 되었나


블로그에 가볍게 주간 일기를 적거나 업무상의 문서를 적는 것을 빼고는 글을 쓴 지 꽤 오래되었다.

글이라는 게 상대적이지만, 여기서의 글은 쫓기듯 쓰는 게 아니라 가만히 앉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찬찬히 적는 글이다. 그러다가 글이 문득 시간을 내어 글이 쓰고 싶어졌다. 그것도 내 직장생활에 대해서.


매번 내 감정을 중심으로 적던 글에서 나의 돈벌이에 대해 글을 쓰려니 조심스럽다. 어디서부터 어떻게까지 얼마나 솔직하게 적어야 할까, 이 글을 누가 보게 될까, 나중에 이런 글을 쓴 걸 후회하지는 않을까. 게다가 예전에는 주로 우울하거나 삽질을 할 때 글을 적었는데, 그러다 보니 0과 양수의 글은 없이 희망적으로 끝내려 노력하는 글이라도 음수의 글만 남았다. 이 글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괜찮다.(고 생각하려고 하고 있다.) 나도 다른 이의 글을 읽고 그랬듯 공감하고 또 동기부여가 되고, 어느 쪽이든 좋으니 그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용기 내어 날것을 적어본다.




2. 어쩌다 네 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나

(왜 그렇게 이직을 많이 했나)


나는 패션디자인과를 졸업했고, 지금은 B2B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기억난다. 대학교 2학년 때 난 절대 회사에 다니지 않을 거라고, 회사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내 브랜드를 만들 거라고 했었다. 말은 참 쉽지. 경험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했던 게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다.


3학년 무렵부터는 패션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4학년 1학기에 졸업 패션쇼를 마칠 때 즈음에는 휴학을 하고 기자단 대외활동을 하고, 막학기를 다니며 UXUI 학원을 다녔다. 사실 말이 UXUI였지 퍼블리싱 학원이었다. 갑자기 코드를 보고 있는 내 모습에 이게 맞나 싶었지만 놀랍게도 그게 강점으로 작용해 지금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직장, B2C 교육 커머스, 콘텐츠 디자이너


2021년 4월, 졸업과 거의 동시에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다. UXUI가 하고 싶어서 학원에 다닌 거였으면서 사회초년생은 그게 그거지 하는 마음으로 괜찮은 조건에 눈이 멀었던 것이다. 상세 페이지와 배너를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며 보냈던 7개월은 고역이었다. 내 생각보다 난 프로덕트 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 다른 CIC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사내 이동 제도가 있는지 물어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주어지는 내일채움공제라는 상당히 좋은 제도를 뭣도 모르고 신청한 탓에 2년은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난 당연히(?) 버티기를 실패했다.



두 번째 직장, B2C 콘텐츠 커머스, 프로덕트 디자이너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게 확실한 나는 첫 회사를 다니며 주말에 (이번엔 진짜) UXUI 학원을 다녀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이직했다. 운이 좋았다. 학원 종강에 맞추어 함께 대외활동을 했던 언니가 친구 회사에서 콘텐츠 디자이너를 구한다며 공고를 공유해 주었다. 그 목록에서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만 보였다. 2일 만에 포트폴리오를 새로 만들었고, 합격했다. 명함에 적힌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글씨에 마음이 들떴다. 하지만 모든 게 쉽지 않았고 1년 7개월 간의 고군분투 끝에 지인 소개를 통해 새로운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지인 소개로 회사에 들어갔지만 재직 기간 중에 서류도 많이 넣었고, 면접도 정말 많이 보고 또 많이 떨어졌다.)



세 번째 직장, B2C 블록체인, 프로덕트 디자이너


여긴 다닌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회사 사정으로 인해 합의 해지가 되었다. 한 회사에 오래 다니고 싶어 면접 때 회사 사정에 대해 물었고, 절대 망할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어느 날 아침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 성격 급한 바로 구직활동을 하고 문제가 생긴 지 한 달 만에 지금 직장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한 달만이라고 해서 쉽게 한 것도 아니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끝없이 평가받고 이유도 모른 채 불합격이란 글자를 마주하는 건 지친다. 그렇게 계속 떨어지다 보면 불합격에 무뎌지기까지 한다. 같은 회사에 3번 이상 떨어져 봤고, 지금 직장을 다니기까지 서류는 100번은 넘게 떨어져 본 것 같다. 이 시기에 알게 된 건 내가 일을 해야 사는 사람이고, 회사를 다녀야 안정적인 루틴 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란 거였다.



네 번째 직장, B2B Saas, 프로덕트 디자이너


한 달 사이에는 7개 정도의 회사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고, 2개의 회사에서 제안을 받았다. 감사히도 제안받은 회사 중 한 곳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제부로 입사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짝짝)


(참고로 내가 다닌 4개의 회사는 모두 크고 작은 스타트업이다.)




3. 어떻게 살고 있나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나)


남자친구와 밥을 먹다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여기가 내 20대 마지막 직장이면 좋겠다"

그리고 남자친구는 대답했다.

"평생직장일 수도 있어"

(헉!)(의 의미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앞서 말했고 누구나 알고 있듯 이직은 정말 힘들다. 언제 올지도 모를 결과를 기다리는 건 정말 힘들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올 나를 증명해야 할 그 시간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것도 힘들다. 그렇게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 수습 기간이라는 이름의 3개월을 보내는 것도 힘들다.


회사와 내가 '서로' 잘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이라고 하지만 내게 이 3개월은 내가 이 회사에 남아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보여줘야 하는 시기 같다. 부자연스럽지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그런 시기.


지금 회사에 와서 원온원을 하며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을 가장 힘들어하는 나는 온보딩 기간임을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은 것이 한 편으로 걱정되고 심심했다. 이걸 이야기했고,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정확하지는 않아도 내가 생각나는 맥락에서 최대한 적어보겠다.)


"제 생각에 (프로덕트) 디자이너 분들의 업무는 바쁜 시기가 되게 간헐적인 것 같아요. 아무래도 개발을 타야 해서 기다려야 하는 시기가 있으니까... 그 시간에 대해서 이전에 계시던 디자이너 분도 부채감을 많이 느끼시더라고요. 그걸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일을 하려고 할 때보다 다른 걸 할 때 더 좋은 생각이 많이 나거든요."


이를 듣고선 마음이 조금 개운해졌다. 나만 이런 걸 느끼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부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참 감사했다. (그럼에도 아예 이를 느끼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만 하하!)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예전에 시니어와 주니어가 다른 점자기가 일을 찾아서(만들어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니어는 아니어도 중(中)니어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중니어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잦은 이직으로 얻은 것'에는 이런 게 있다.

(겨우 입사 한 달 차임에도) 빠르고 수월하게 잘 적응하고 있다. 적응력 상승!

다양한 분야의 직장에서 자잘 자잘 쌓아온 노하우로 내가 할 일을 정의하고, 해야 하는 일들을 먼저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많이 늘었다.

연봉이 올랐다.

다양한 분야를 빠르게 경험하고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정말 큰 소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와 무관하게 아직 회사 안팎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도 많다.)

부족한 점이야 아직 많지만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지금 다니는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나도 살면서 스타트업이 아닌 대기업에서 일을 해볼 기회가 있을까? 나는 과연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매일매일 답도 없고 끝도 없는 고민을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고민들로 삽질을 하다가도 전보다는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서 삽을 내려놓는 것.


절대로 하지 않겠다던 회사를 다니고, 아직도 죽을 만큼 싫은 출퇴근 지하철을 버티며 타고, 소중한 주말을 빡빡하게 보내고 일요일 밤이 되면 조금 슬퍼지는 그런 삶이 익숙해지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나도 이제 철이 들었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장난스러운 말을 던지며 알찬 주말 콘텐츠를 계획하는 3년 차 디자이너는 이렇게 살고 있다.


직장인 모두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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