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내게 주는 건

산을 타며 삶을 배운다.

by 듀이

01. 산의 기억


산을 처음으로 탄 건 아주 어릴 때였다.

지방에 살던 나는 아빠, 삼촌, 할머니, 할아버지를 따라서 여기저기 산을 올랐다.

올랐던 산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어떤 기분과 마음이었는지는 기억이 난다.

나는 자라고, 환경도 바뀌고 산을 오르지 않게 되었다.


2021년 10월, 서울에서 산 지 5년 즈음되었을 무렵 이직을 했다.

입사한 지 한 달 즈음되었을 때, 다 같이 북한산에 가게 되었다.

서울의 산은 처음이었고 뒤쳐지면 어쩌지, 힘들면 어쩌지 등의 걱정을 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산행은 내 취향 그 자체였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햇빛을 받고,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고, 흙을 밟고, 맨손으로 돌을 짚고,

묵묵히 오른 정상에서의 성취감까지.


그렇게 등산은 내 취미가 되었다.




02. 다시, 산


처음에는 서울의 산으로 시작해서 경기의 산을 탔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일수록 더 좋았다.

하지만 자차가 없는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갈 수 있는 산에 한계가 있었다.


가끔 고향인 전주에 내려가서 삼촌 차를 타고 산에 가던 게 전부였다.

(2022년 1월에는 삼촌의 제안으로 한겨울에 지리산 천왕봉을 탔는데,

아직도 그 5시간 반의 잊지 못할 만큼 행복했던 산행의 모든 기억이 생생하다.)

그저 현실을 살며 가끔 도봉산, 관악산 혹은 전주에서 가까운 산을 아주 가끔 갔다.


2023년 4월, '알레버스'라는 서비스를 소개받았다.

등산 문화에 무지하던 내게는 혁명이었다!

고급 리무진 버스가 시작점에 내려주고 종점에 데리러 온다니...

소백산을 시작으로 다시 명산 타기에 불이 붙었다.

4월 9일부터 5월 15일까지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연차까지 내가며 5개의 산을 탔다.

(돌아오는 주말엔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가리산을 오를 예정이다.)




03. 산이 내게 주는 건


"나는 아직 산의 매력을 모르겠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말했다.

그 자리에서 친구는 포스트잇을 꺼내주었고,

카페에서 마침 무료로 나누어주는 볼펜으로 강의 아닌 강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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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왜 산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장난스럽게 당장 생각나는 몇 가지를 적어 내려갔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이 질문을 그날 이후로 몇 번이나 떠올렸다.


답은 여전히 부족하지만 아래와 같다.

1. 쉴 새 없이 힘차게 뛰는 심장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2. 정상에 올랐을 때의 성취감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든다.
3. 푸른 하늘과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경관은 경외심을 들게 만든다.
4. (사람이 없는 새벽, 아침에 산을 주로 타는데) 사색하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5. 산을 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과의 대화는 추억으로 남고, 삶의 에너지가 된다.


산은 내게 사랑하는 사람과 같다.

사랑하는 사람 역시 산과 같다.


그 깊이와 역사를 전부 알 수 없고, 늘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 주고 안아준다.

보물과도 같은 기억 하나하나를 잊고 싶지 않아 등산기를 적기 시작했다.

문득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휴식을 취할 때 보면 입가에 미소가 뗘진다.


https://blog.naver.com/ccoqifi/223102882522

(엊그제 다녀온 구봉산 등산기를 슬쩍 첨부해 본다.)


삼촌이 말하기를 한국에는 4,000개가 넘는 산이 있다고 한다.

30개의 산도 채 오르지 못한 등린이지만, 수많은 산은 내 인생 전체에 있어 큰 목표가 됐다.


황매산을 오를 때 길잡이가 되어주셨던 곧 팔순을 앞둔 진주 할아버지는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이렇게 말했다.


"산 계속 타. 알겠지?"


찬찬히 그러나 꾸준히 오르락내리락하려고 한다.

그렇게 산처럼 단단해지려고 한다.


산을 타며 삶을 배운다.

산은 내게 삶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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