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늦겨울의 바람이 도서관 마당을 휩쓸고 지나갔다.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햇살은 점점 더 길어졌고, 나뭇가지 끝에는 작은 새순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마당 한쪽에서는 얼어붙은 낙엽이 바람에 쓸려 작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느 날, 도서관 마당에 낯선 손님들이 찾아왔다. 조그만 고양이 세 마리가 벤치 아래에서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 아직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몇몇 도서관 이용자들은 이미 간식을 챙겨 주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떠돌이 강아지 한 마리가 도서관 마당에 자리를 잡았다. 하얗고 복슬복슬한 털을 가진 녀석은 바람을 피해 벤치 밑에서 몸을 말고 있었다. 누군가 다가가면 경계하면서도, 따뜻한 손길을 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동물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사서 희정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도서관 직원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동물들을 도서관 마당에서 돌봐야 할지, 아니면 적절한 보호소를 찾아야 할지 의견이 엇갈렸다. 일부는 “공공도서관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조용히 머무르는 곳인데, 동물이 있으면 방해될 수도 있어요”라고 주장했고, 반대로 “이 동물들도 마을의 일부잖아요. 다 같이 돌볼 방법을 찾아봐야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서관 이용자가 마당을 지나던 중 바닥에 놓인 강아지 배변을 밟고 크게 화를 냈다.
“이게 뭐예요? 도서관이 동물 보호소도 아니고,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갑작스러운 항의에 사서들과 직원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마당에 동물을 돌보는 것이 점점 현실적인 문제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도서관과 지역 주민들은 토론 끝에, 고양이들은 마당 한쪽에 작은 쉼터를 마련해 주고, 강아지는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임시 보호하기로 했다. 또한, 애견 주인들과 협력하여 마당의 청결을 유지하고 배변봉투와 처리용 쓰레기통을 비치하기로 결정했다.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이는 몇몇 주민들이 있었고, 도서관에서도 입양 홍보를 진행하기로 했다.
**
강아지가 도서관 마당에 머무른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애견인 모임을 운영하는 주민들이 도서관을 찾아왔다.
“우리 강아지들이 도서관 마당을 자주 오가다 보니, 여기서 뭔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강아지에게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어린이들이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활동이었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옆에 두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으며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는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하여, 도서관 이용자들이 자신의 강아지를 데리고 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매주 토요일, 마당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온 보호자들과 아이들이 함께 모여 책을 읽는 풍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반려견을 품에 안고, 혹은 옆에 앉힌 채로 조용히 책을 읽어 주었다.
첫 프로그램 날, 도서관 마당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였다. 봄의 기운이 서서히 도서관을 감싸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살이 아이들의 책장 위로 내려앉았고, 벚꽃 봉오리들이 곧 피어날 듯 간질거리며 흔들렸다.
한 아이가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을 펼치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강아지똥은 쓸모없는 게 아니야. 작은 꽃에게 소중한 거름이 되는 거야.”
책을 읽는 동안, 강아지는 아이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집중해서 바라보는 강아지를 보며 점점 더 책 읽기에 몰입했다. 강아지가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자, 아이는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이 강아지, 내 목소리 듣고 있는 거 같아요!”
다른 아이들도 자신의 책을 들고 와 강아지들에게 읽어 주기 시작했다. 동물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오히려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제이는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공간이던 도서관이 이제는 동물과 사람을 잇는 장소로 변화하고 있었다.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 마당에서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주는 어르신들, 그리고 애견인 모임에서 자발적으로 환경을 정리하는 모습까지. 작은 변화들이 모여 도서관의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요즘 도서관이 참 바쁘네요.”
제이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재미있는 곳이기도 하죠.”
강철이었다. 서점 운영으로 바쁜 그였지만, 도서관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강아지한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라… 독특하네요.”
그가 웃으며 제이 옆에 앉았다. 제이는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로 아이들이 집중도 잘하고, 강아지도 가만히 듣고 있어요.”
“그럼 나도 한 번 읽어줘야 하나요?”
장난스러운 말이었지만, 제이는 그가 진심으로 관심을 보인다는 걸 느꼈다. 강철은 도서관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가 운영하는 서점도 지역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기에, 도서관과 서점이 함께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늘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그와 나란히 앉아 강아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제이는 잠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책과 사람, 그리고 도서관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그녀 역시 또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따뜻한 봄바람이 도서관 마당을 감싸며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