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 소설
봄기운이 완연한 4월, 도서관 앞마당의 이팝나무 가지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바람이 불었고, 도서관 창문을 열면 한기에 살짝 움츠러들었다.
행복도서관 내부는 오후가 되자 더욱 활기를 띠었다. 어린이 자료실에서는 유치원생들이 동화책을 읽으며 깔깔 웃었고, 성인 열람실에서는 신문을 넘기는 어르신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창가 자리에서는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고요하게 책장을 넘겼다. 하지만 이런 평온한 도서관 풍경 속에서도 제이의 마음은 복잡했다.
4월은 도서관에게 특별한 달이었다. 매년 4월 12일부터 18일까지는 ‘도서관주간’ 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4월 12일은 ‘도서관인의 날’ 로 법정 기념일로 정해져 있다.
행복도서관도 도서관주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린이 대상 독서 프로그램, 지역 작가 초청 강연, 독서토론 모임 등 행사가 빼곡히 예정되어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이의 신경을 쓰이게 한 것은 예산 문제였다.
“올해 도서관 자료 구입 예산이 또 줄었다고요?”
제이는 예산안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도서관 운영 예산 중 도서 구입비가 작년보다 10%나 줄어들었다.
“요즘 지자체 예산이 빠듯해서 그래요. 지역 행사 예산은 늘었는데, 도서관 예산은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더라고요.”
도서관장은 제이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우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순위를 따지다 보면, 책보다는 다른 부분에 예산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에요.”
책보다 중요한 게 무엇이 있을까? 제이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녀는 도서관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라, 지식을 나누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예산이 줄어들면, 새 책을 들여오는 것이 어려워지고, 독서 프로그램 운영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주간을 맞아 ‘책문화 축제’를 기획하고 있지만, 프로그램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떤 행사를 우선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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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고민 끝에 오랜만에 책마루를 찾았다. 책마루는 행복도서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동네서점이었다.
책마루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래된 나무 책장과 따뜻한 조명이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점 입구에는 ‘책 한 권의 세계, 이곳에서 펼쳐집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출입문 옆 작은 테이블에는 지역 작가들의 책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을 운영하는 강철 대표는 5년 전 서점을 열었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서점이었지만, 대형 온라인 서점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북토크, 독립출판물 판매, 지역 작가 초청 행사 등 다양한 활동을 시도했다.
강철은 책마루를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책문화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는 언제나 동네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었고, 특히 행복도서관과 협력하며 지역의 독서문화를 활성화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철이 카운터에서 책을 정리하다가 반갑게 인사했다.
“제이 사서님, 오랜만이네요. 요즘 도서관은 어떠세요?”
제이는 강철이 건네주는 커피 한 잔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민이 많아요. 도서관 예산이 줄어서요.”
강철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팔리지 않으니 출판사들은 점점 베스트셀러 위주로만 책을 내고, 작은 출판사들은 도서관 납품이나 공공기관 계약 없으면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그러니까 도서관이 더 중요하겠죠.”
“그렇습니다. 도서관이 베스트셀러만 들여놓으면 결국 대형 출판사만 살아남고, 중소 출판사와 지역 작가들은 설 자리가 없어집니다.”
제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도서관은 공공기관으로서 다양한 책을 구비할 책임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예산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럼 도서관에서 지역 출판사나 서점과 협력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강철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지역 작가와 출판사들이 참여하는 북토크나 독서 프로그램을 기획해 보면 어떨까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빌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책을 만드는 과정까지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이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에요. 도서관주간에 맞춰 ‘출판과 독서의 길’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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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이번 기획을 통해, 도서관은 책을 통해 사람들을 연결하고, 출판생태계를 고민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을, 도서관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예산이 부족하다고 해서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다양한 책을 소개하고, 출판 관계자들과 협력하며, 독자들이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서로서의 역할이었다.
도서관주간과 도서관인의 날을 맞이해, 행복도서관은 지역 출판사와 서점을 아우르는 ‘책문화축제’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출판계의 현실을 공유하고, 도서관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행사였다. 창밖에는 어느새 빗방울이 그치고, 이팝나무 가지 사이로 연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제이는 조용히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책의 역사』를 펼치자,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책을 만들었지만, 책 또한 우리를 만들었다.’
오늘도 도서관은 책과 사람, 그리고 세상을 잇는 역할을 해 나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