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 49재와 상주사>
지난 6월 14일에 외할머니 49재를 지내고 왔다. 49재를 한 곳은 군산에 있는 ‘상주사’라는 절이었다. 전날 새벽까지 비가 많이 내렸고 당일에도 비가 많이 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새벽 일찍 군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비가 그쳐 구름과 해가 조화로운 날이었다.
상주사에 도착했을 때 어렴풋이 예전에 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19년 전 85세의 일기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49재를 했던 곳이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11살 차이였는데, 그땐 집안 어르신들이 얼굴도 안 보고 부부의 연을 맺어주었던 때라 외할아버지는 어떤 신부인지 무척 궁금했는데, 혼인하는 날 신부가 키도 크고 얼굴도 이뻐서 너무 좋아하셨다고 한다. 그때 외할머니 나이가 18살이었다. 두 분은 딸 1명과 아들 4명을 두셨다. 우리 엄마가 이중 맏딸이다.
내가 태어난 해가 1973년 석유파동이 나고 매섭게 추었던 겨울이었는데, 전주예수병원에서 산모와 아기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 다행히 엄마도 나도 건강하게 살았다. 그래서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외할머니 사랑과 손길이 더 많이 필요했다.
사십구재(四十九齋)는 고인이 죽은 후 초재부터 1주일(7일)마다 한 번씩, 총 7번 지내는 재(齋)를 말한다. 요즘엔 보통 49재만 지내는데, 외할아버지 때도 그랬고, 이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족들은 일주일마다 7번 재를 지냈고, 마지막 7재에는 손주들까지 함께 했다.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인데, 49재를 끝내면서 상주사 주지스님이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외할머니가 상주사에서 불공을 드린 지 아주 오래 되셨다고 한다.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18살에 얼굴도 본적 없는 낯선 청년에게 시집 와서 자식 낳고 사시면서 본인보다는 가족들, 손주들을 위해서 불공을 드리셨을 모습이 선하다.
1933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광복, 한국전쟁, 유신, 산업화, 민주화의 역사를 거친 외할머니는 무학이지만 지혜로운 총명함이 있으셨다.
구십 평생을 살아오신 외할머니 인생에서 아픔도 있고 고통도 당연히 있었을 텐데, 생각해 보면 외할머니가 누굴 탓하거나 큰소리로 화를 내신 적이 없으셨다. 언제나 잔잔한 호수와 같으셨는데, 그러기까지 얼마나 스스로 내공을 단단하게 만드셨을까.
상주사 대웅전 앞에 표지석이 있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오랜 역사가 깃든 절이었다. 상주사(上柱寺)는 군산시 서수면 취성산 동쪽 기슭에 있는 자리잡고 있다. 상주사 대웅전은 전북특별자치도 지방유형문화유산 제37호이다. 상주사는 백제 무왕 7년(606년)에 혜공(惠空)대사가 세운 절이고, 고려 공민왕 11년(1362년)에 나옹(懶翁) 대사가 낡은 부분을 헐고 새로 지은 것을 조선 인조 19년(1641)에 다시 고쳐 지었다고 한다. 고려 공민왕이 이곳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기도를 올린 인연으로 ‘나라의 기둥이 되는 절’이라는 의미의 上柱寺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인생을 생각해 본다.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했던 희망들. 외할머니의 간절한 소망들. 하늘의 별이 된 외할머니의 마음. 살아있는 우리는 이렇게 그리운 마음을 담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