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저널> 창간 33주년호를 발행하면서 ‘출판개혁’을 외치다
<출판저널> 518호는 창간 33주년호이다. 필자는 2006년 7월 11일 수석기자로 <출판저널> 편집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8년 편집장, 2011년에 발행인으로 종사해 왔으니 햇수로 15년째 <출판저널>과 함께 하고 있다. <출판저널>은 창간 당시 한국출판금고(현재 재단법인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에서 출판진흥을 위한 지원금으로 발행되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원이 중단되었고, 2002년 발행처가 출판계 단체인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대한출판문화협회는 복간한 지 7년만인 2008년에 <출판저널>을 휴간하였고 그해 겨울 12월에 수석기자였던 필자가 <출판저널> 발행권을 양도받으면서 2개월 만에 복간하여 지금까지 휴간 없이 13년째 발행하고 있다. 발행하는 동안 문체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단체 등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있다. 이는 순전히 <출판저널> 존재정신의 가치를 믿는 독자들, 필자들, 자문위원들, 그리고 편집자들의 헌신으로 가능했다.
<출판저널>이라는 매체를 만들면서 필자가 얻은 소득은 우리나라 출판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시각을 가졌다는 것이다. 출판계뿐만 아니라 도서관, 서점, 독자, 문화콘텐츠까지 그 관계성과 연결성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책문화생태계’ 관점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눈과 심장을 가지게 되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된 것이다.
<출판저널>을 발행하면서 안타까운 점은, 출판계 혁신이 더디고 산업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올해 6월 8일 송인서적을 인수한 인터파크송인서적이 경영난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송인서적 이미 두 번이나 부도를 냈으며 출판 및 지역서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런데 대기업인 인터파크가 인수하였어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왜 그럴까.
출판유통 혁신 과제는 지난 1980년대부터 제기됐다. 30년이 넘도록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과제이다. <출판저널> 1987년 7월 20일 창간사를 보면 “문화공간의 확대부터 유통구조의 합리화”라는 고 정진숙 초대 발행인(을유문화사 창립자)의 글에서도 나온다.
사람의 건강을 체크하는 요건이 신진대사가 원활하여 순환이 잘 되는가이다. 출판산업도 마찬가지다. 출판이 산업으로서 선순환 되기 위해서는 유통이 잘 되어야 한다. 책이 생산되어 소비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이 어느 곳에서 막히지 않고 선순환 됨으로써 산업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업계의 건강한 혁신은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자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즉 내부로부터의 개혁이 필요하다. 출판유통의 건강성은 단순히 도매상이 살아남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출판유통은 악순환의 집합체였다. 밀어내기, 사재기, 도서정가제 위반, 베스트셀러 집착, 어음 거래, 서점의 판매 투명성 문제, 공급율 차별 등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났다. 송인서적이 문방구 어음까지 주는 현실에서도 출판계 내부에서조차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즉 내 몸이 아픈데 아프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출판계 밖의 환경(기술, 독자 등)은 날로 변화하고 있는데 출판계 스스로 고치고 혁신하지 않으니 문제들이 쌓여서 고착될 수밖에 없고 이젠 올드미디어라는 꼬리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 사망할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2017년에 송인서적이 두 번째 부도가 났을 때 필자는 출판계가 자체적으로 출판유통공공인프라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제3자 인수는 아픈 곳을 도려내지 않고 무마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터가 인수한다고 했을 때 필자는 오래가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다.
우리 출판계는 대부분 5인 미만 영세 사업장들이다. 대기업처럼 따로 출판사가 유통시스템을 독자적으로 갖출 수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출판계와 서점계가 힘을 모아서 출판유통공공인프라를 구축하여, 투명한 판매과정, 공정한 공급율, 현금 지불 등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출판유통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과정도 몇몇 사람들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교체가 필요하며, 공개적이고 투명한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출판계는 몇몇 사람들이 어젠다를 밀실에서 끌고 가는 형국인데 이들이 최고의 전문가라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면 엉뚱한 목적지로 갈 수밖에 없다. 출판진흥원에서 출판유통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 내용에 대해서 아무도 모른다. 이 글을 쓴 날이 6월 15일인데, 이날 오후 3시경 출판진흥원으로부터 ‘출판유통통합시스템 구축(2단계)’ 사업 설명회를 6월 17일에 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정책이 효율성이 있기 위해서는 정책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며 신속해야 한다. 또한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2018년부터 출판유통통합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는데 2단계까지 오는 과정에서 출판계에 공개적으로 의견 수렴을 실시하거나 설명회를 하지 않았다. 요즘 코로나로 인하여 사회적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현장까지 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는가. 유튜브 등 미디어로 중계하여 제주도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출판인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정책이 현장 속으로 신속하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 출판유통은 책문화생태계 관점에서 통합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출판사, 서점 등 모두가 희생하고 양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희생을 감수하고 혁신을 도모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책문화생태계 주체들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서점에서는 책을 못받고 출판사들은 서점에 우리 출판사 책이 없는 불공정, 출판사 책이 어느 서점에서 어떻게 팔렸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투명한 거래 방식 등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결국 독자들을 계속 잃어가고 있다. 지속가능한 출판을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 출판계에 종사할 미래 출판인들에게 좋은 환경을 물려주는 것이다. 30년 전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4차산업혁명 시대의 출판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다.
코로나가 두려운 이유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존재성이 강한 것은 소란스럽지 않고 쉽게 보이지 않는다. <출판저널> 창간 33주년호이지만 소란스럽게 알리지 않았다. 예전처럼 평범하게 <출판저널> 통권 518호를 시작한다.
글/ 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문화콘텐츠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