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거리두기, 성찰의 시대, 그리고 책문화

2020년 출판저널 520호 송년칼럼

코로나 시대의 몇 가지 특징


2020년 한 해가 저문다. 올 한해는 연초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로 우리 삶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적으로 큰 변화를 주었고 여러 모로 위기를 겪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전면적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했다. 몇 가지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비대면 사회의 일상성이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를 위해서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되는 현상을 보여준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게 해준다. 그러나 비대면으로 이어지는 활동으로 식당 등 자영업자들,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의 한숨이 매우 깊어졌다. 이들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정부 정책이 세심하게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초중고의 교육현장에서 소외받는 아동과 청소년들이 없도록 해야 한다.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가 집에 불이 나서 생명이 위독해진 형제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흘려보내면 안 된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어른들이 세심하게 챙겨야 할 사회적 보육과 양육이 요구된다. 비대면으로 택배 등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매우 심해졌고 목숨까지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계속 되고 있다. 이렇게 비대면 시대에 일어나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도 숙제이다.   


둘째는 공간 개념의 변화이다.

거리두기 일환으로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일정하게 정착된 사무공간이 없어지고 집이나 집 근처 카페가 내가 업무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디지털 유목민이 되었고 이를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편으로는 학교, 공공도서관 등 공공의 공간까지 없어지게 되면서 공공의 공간이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 지역사회를 위해서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공공의 공간은 멈추더라도 공공의 서비스는 멈추면 안 되기 때문이다.    


셋째는 성찰하는 시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람들과의 거리두기를 하게 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혼자서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이럴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코로나 시대에 네플릭스 등 온라인 콘텐츠 소비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인간은 낯선 시간을 받아들여야 하고 그 낯선 시간을 익숙한 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익숙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찰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이 그 역할을 도와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책을 읽으면서 성찰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나름대로 각자 그 방법은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개인적으로 2020년은 스펙타클한 한 해였다. 2020년 2월에 박사과정을 졸업한 후 3월에 21대 총선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로 현실정치에 발을 디뎠다. 1987년 민주화투쟁 이후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실현되었지만 일상의 민주화는 실현되지 못했다고 본다. 국회, 검찰, 언론, 교육 등 모든 사회 분야에 기득권 정치가 깊게 뿌리 내려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정치의 주체는 정치세력 기득권층이다. 따지고 보면 정치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청년정치를 앞세우지만 (정치에서 청년은 만 45세이다) 청년정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대상이고 기득권 정치에 이용되는 수단일 뿐이다. 이러한 잘못된 관행과 기득권 정치문화를 바꾸어야 진정한 민주주의, 사람 사는 사회가 실현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희망 고문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상한 문화가 난무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책 제목이 출판시장에서 대박을 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과연 청년들이 아프면서 청춘을 지낼 정도로 여유가 있는지, 아니 희망을 품어도 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었다. 최근 혜민스님에 대한 뉴스가 보도가 되면서 구도자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책문화의 중심에 서 있는 입장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매우 가벼워졌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중누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존재철학과 존재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 사회의 뉴스 보도는 연일 검찰개혁이 화두이다. 그동안 국회에 입성한 국회의원 중 검사, 판사, 변호사 출신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개혁이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개혁과제들 가운데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진정한 선진국인 문화강국에 대한 희망은 너무 과분한 꿈이다. 이렇게 가벼움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것은 결국 책문화라고 본다. 이 시대 사상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책은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시대정신을 담은 사상은 부재하다. 말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정돈된 언어의 시대가 필요하다. 필자의 서재에는 장준하 선생이 발행한 <사상계>가 꽂혀 있다. 사상이 없는 국민에겐 역사가 없다. 출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제목 하나 잘 만드는 출판은 사람의 생명을 단축시키는 마약과도 같다. 

탈진실의 시대이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가를 알 수 없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깨어 있는 시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은 각자의 마음 속에 이미 있다.     


2020년을 <출판저널> 독자들과 함께 해서 기쁘고 감사한 한해였다. 코로나가 계속 된다고 하니 <출판저널> 편집부도 고민이 많다. 종이잡지를 계속 낼 것인가. 전자잡지로만 낼 것인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변화는 당연한 것이다. 그 변화를 오로지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다.     


글/ 정윤희 <출판저널> 발행인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이사진 구성 방향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