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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은?

‘출판’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헌법에 ‘언론·출판의 자유(헌법 제21조 1항)’가 있다. 언론言論은 저널리즘의 정신이 발현되는 것이며, 출판出版은 인간의 다양한 정신적·지적 산물이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가 언론·출판의 자유와 함께 익숙한 개념이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서 나오는 ‘표현의 자유Freedom of Expression’이다. 언론과 출판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으로 ‘표현’된다. 언론과 출판의 결과물이 신문, 잡지, 방송, 책 등인데 출판의 개념이 언론보다 더 크다. 즉 출판Publication은 신문, 잡지, 방송, 책 등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활동으로서 모두 출판물에 속한다. 우리나라는 신문은 ‘신문진흥법’, 잡지는 ‘잡지진흥법’, 방송은 ‘방송진흥법’, 도서는 ‘출판진흥법’으로 세세하게 법으로 쪼개어 놓았다. 그리고 방송법, 신문법, IPTV법은 ‘미디어법’으로 통칭한다.  

출판진흥법의 내용을 따져보면 사실상 ‘도서진흥법’이다. 이렇다보니 범위가 큰 출판이 법률적 측면에서는 가장 축소되어 있다. 법이 이렇게 나뉘어져 있다 보니 중앙부처의 행정도 나뉘어져 있다. 예를 들면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국 아래 신문, 방송, 잡지는 ‘미디어정책과’에서 담당하고, 출판은 미디어정책국 아래 ‘출판인쇄독서진흥과’에서 담당한다. 행정에서부터 출판의 범위가 축소되어 있다 보니 정책적 관심도에서도 멀어질 수밖에 없다.

필자의 의견은 지금의 출판법을 도서법 또는 책문화진흥법으로 바꾸고 신문법, 잡지법, 방송법 등을 모두 출판 또는 미디어라는 큰 울타리에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도서(책), 신문, 잡지, 방송, IPTV 등은 모두 편집Edit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퍼블리싱Publishing하여 미디어Media로서 독자에게 전달된다.

정부가 미디어 관련 법과 행정 조직을 짤 때 균형적인 시각에서 통합적인 관점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수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책 예산이 과도하게 신문, 방송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법으로 통칭하는 곳으로 쏠리고 있다. 힘 있는 이익단체나 정치적 힘에 휩쓸리는 정책을 지양해야 한다. 따라서 시대의 변화 흐름에 맞게 법과 행정을 개정 및 재편할 필요가 있으며, 균형감 있는 미디어 정책 수립과 구현이 필요하다.     


드디어 폐지되는 한국ABC협회

지난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신뢰성 논란을 빚은 한국ABC협회에 대하여 정책적 활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도 <출판저널>을 10년 넘게 발행하고 있는 발행인이자 편집인이기도 해서, 언론개혁에 대한 시급성과 중대성을 잘 알고 있었는데, 현장에서 가장 큰 폐해가 바로 ABC라는 제도와 한국ABC협회였다. <출판저널>을 출판하면서, 또한 정기간행물자문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한국ABC협회의 실효성이나 불공정성 등에 대해서 자문회의와 칼럼을 통해서 문제 제기를 해왔지만, 바위에 계란치기와 같이 언론구조의 나쁜 공생을 바꾸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조선일보 등 일간지 신문들이 인쇄가 끝나면 독자가 아닌 동남아 등으로 폐지로 팔리는 장면들을 보면서 경악했다. 바로 우리 언론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지난 2020년 11월, 한국ABC협회 내부 관계자가 조선일보 등 언론사의 신문부수 조작이 있었다는 제보로 한국ABC협회의 폐단이 외부에 밝혀지기 시작했다. 국민세금으로 정부광고료를 받는 신문들이 인쇄가 떨어지자마자 동남아로 수출되는 것이 국민들에게 알려지자, 소관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사무검사를 시행하였고,  6월 30일까지 사무검사 권고사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7월 8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신뢰성 논란을 빚은 한국ABC협회에 대하여 정책적 활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즉 문체부가 한국ABC협회에 지원했던 공적자금 잔액 약 45억원을 환수하는 등 한국ABC협회 기능을 사실상 폐지한 것이다.

작년 기준 1조 1천억원이 넘는 정부광고 집행예산이 매년마다 1조원이 넘는 국민세금이 기득권 언론사들만을 위한 잔치였다는 점에서, 국민세금을 허투루 쓴 이러한 폐단을 반드시 조사해서 엄벌해야 한다. 한국ABC협회는 기득권 언론사들의 마르지 않는 황금 돈줄이었던 샘이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한국ABC협회. ABC란 Audit Bureau of Certification의 약자로, ‘정부광고법 시행령 5조’에 따라 정부광고 매체 선정 시 참고자료로 쓰이는 매체 부수 공시를 담당했다. 신문사 및 잡지사의 유가 발행 부수, 그리고 방송사의 시청점유율을 산정해서 공시하고, 정부 등 광고주들은 한국ABC협회의 매체부수공시 결과를 바탕으로 광고료를 산정하고 광고를 주는데, 그 자료를 만들어 내는 기관이다. 한국ABC협회는 1989년에 설립된 단체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 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다. 즉 한국ABC협회를 관리, 감독해야 할 문화체육관광부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그동안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국회도 책임이 있다.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 시행에 따른 법률 시행령’ 제5조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법 제7조에 따른 신문 및 잡지의 전체 발행부수 및 유가 판매부수에 대한 자료 요청 대신 ABC부수공사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기 때문에 신문사, 잡지사들은 정부광고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ABC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을 해야만 했다. 신문사와 잡지사는 한국ABC협회에 회원 가입을 하고,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이상의 연회비를 협회에 내야 정부광고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받는다. 조중동처럼 큰 언론사들은 정부광고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영향력 있기 때문에 몇백만원 연회비는 큰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저널>처럼 중소형 잡지까지 한국ABC협회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만들어 수십만원 이상의 연회비를 받았다.

한국ABC협회의 역할이 강화된 시기는 이명박정부가 들어서고 미디어법이 개정되면서부터이다. 2011년도에 모든 잡지사들도 한국ABC협회에서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으며, 문체부가 선정하는 우수콘텐츠잡지 선정사업에 한국ABC협회 가입 여부를 평가점수로 매기기 때문에 연회비를 내면서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201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 중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있는데, 정부광고를 받을 때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10% 가져가고 매체에 광고료를 지급해 주는 방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출판저널> 같은 작은 매체에는 정부가 광고를 주지 않기 때문에 ABC협회에 가입을 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었다. 결국 한국ABC협회는 철저하게 정부가 기득권 언론사들에게 광고료를 지원하는 명분이었던 샘이다. ABC제도가 이명박정부때부터 강화되기 시작했고 박근혜정부, 문재인정부에서도 기득권 언론사들에게 그야말로 마르지 않는 황금 돈줄이었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기금지원 자격에서 ABC 가입조건을 삭제하는 ‘지역신문법개정안을 발의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광고제도 개편 계획을 발표했다. 국회와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한국ABC협회를 폐지하고,  제도 개선을 통해서 대안을 마련한다는 소식이다. 특정 권력형 언론사만이 아닌, 우리 사회  분야의 다양한 전문 매체들이 골고루 성장할  있는 정책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출판저널>이 1987년 7월 20일에 첫 호를 냈으니 올해 34주년이다. 필자가 2006년 7월부터 <출판저널> 에디터로 일을 시작했으니 개인적으로 <출판저널>과의 인연은 15년째이다. 아직도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읽기는 노동이다. 내 몸, 정신,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럼에도 읽기는 의미 있는 일인 것은 분명하다.     


글/ 정윤희    

문학 박사. 언론학과 문화콘텐츠학을 공부한 책문화생태주의자이다. 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정기간행물자문위원회 위원 등을 지냈으며, 19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전라북도 도서관정보서비스위원회 위원, 서울시 지역서점위원회 위원, 경기도 상징물관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책문화생태론》《도서정가제》《스무 살을 건너는 8가지 이야기》《내 인생을 서재에서 시작되었다》 등을 썼다. 유튜브 채널 <책문화네트워크 정윤희TV> 진행하고 있다.   



* 본 글은 <출판저널> 524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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