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이 내게 알려준 것
제주도 여행이 정말 가고 싶었다. 나에게 제주도 여행은 고등학생 때 딱 한번 다녀온 수련회가 전부였다. 비행기를 처음 타 봤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던 탓일까. 제주도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나 빼고 모두가 제주도를 다녀온 것 같았다. 그 덕에 제주도엔 뭐가 있고 어떤 것이 유명한지 꽤 알게 되었다. 나중에 제주도에 가면 다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랬던 내가 스물 아홉살이 되어 드디어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르게 다녀오고 싶었다. 유명한 곳을 돌고 오기 보다는 조용한 마을로 들어가보고 싶었다. 제주도 사람들이 만끽하는 일상을 똑같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마음 맞는 친구가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마을은 오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저녁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숙소에 도착하니 주변 모든 것들이 잠든 듯 어두웠다. 창문으로는 오조포구가 펼쳐져있고 그 뒤로는 성산일출봉이 보였다. 일출과 일몰을 본다면 멋있을게 분명한 풍경이었다. 친구와 나는 일출을 꼭 보자며 이른 아침 기상을 다짐했다. 평소라면 게으름을 폈을테지만 우리는 곧잘 일어났다. 일출을 보기 위해 창문 앞에 나란히 앉았다. 지긋이 시작되는 일출을 바라보았다.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 해. 짧지만 강렬했다. 힘 같은 것도 느꼈다. 왠지 어딘가에 쏟아내야 할 것 같았다. 의욕 넘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간만에 아침도 먹었다. 하루를 빨리 시작한 덕분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옆 동네인 종달리 마을로 갔다. 조용한 동네였다. 제주도 마을답게 낮게 쌓인 돌담들이 각 집을 둘러싸고 있었다. 민가 사이에는 종종 식당, 카페, 서점들이 보였다. 이 곳들을 이용하는 일은 꽤 특별한 일이었다. 서울에선 예쁜 카페, 맛있는 식당, 분위기 좋은 서점을 일부러라도 찾아다니곤 했다. 하지만 이 곳에선 찾는 행위가 의미가 없다. 몇 개 없기 때문이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가게가 보이면 들어가곤 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에서 특별한 행위에 속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만나는 순간이었다.
마을 산책을 끝내고 이르게 숙소로 돌아왔다. 일몰을 봐야하기 때문이다. 서서히 지는 해는 일출과는 다른 에너지를 줬다. 지는 것, 사라지는 것, 끝나는 것을 용기 있게 마주할 힘을 줬달까. 종종 하루가 마무리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일몰을 바라보니 하루를 끝내는 데에도 용기와 힘이 필요하단걸 느꼈다. 종달리와 오조리에서의 하루가 조용하게 시작해서 고요하게 끝났다.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한 여행이었다. 제주도에서 뭐했냐고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뭐라 설명하기 부끄럽기도 하다. 그들이 기대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일상을 디자인 할 수 있는 힘이다. 때로는 평범하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땐 간단한 검색만으로 특별한 일이나 장소를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과 신변에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 두기만 해도 일상을 특별하게 디자인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언제라도 즐겨 마실 수 있는 차,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을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밥집, 이동 중에 읽을 수 있는 책, 잠들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머리맡의 책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일출과 일몰을 보는 것이다. 적어도 하나는 꼭 봐야 한다. 일출은 하루를 주체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일몰은 하루를 미련 없이 끝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하루의 시작은 괴롭고 하루의 끝은 늘 미련이 남는다. 우리의 하루는 늘 모순이다. 어쩌면 시작이 괴로워 특별한 것을 찾고,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해 미련이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것만 좇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족할만한 하루를 디자인 할 수 있어야 한다. 특별함을 좇아 제주도로 떠났지만 여행은 오히려 내 일상을 보게끔 했다. 여행이란 일상을 디자인 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여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Ps. 여행을 함께 해준 친구가 있었기에 좋은 영감을 얻고 올 수 있었습니다. 일상을 특별하게 디자인 할 수 있는 큰 힘 중 하나는 바로 친구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