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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Oct 19. 2022

극한직업 유학생 부인 10

드디어 나성 입성-!

나름대로 분류해 본 유학생 부인의 세 유형은 다음과 같다. 


1) 본업에 매진하는 경우 - 유학생 / 일
2) 본업은 있으나 휴직 중인 경우

3) 전업 주부



나는 남편의 박사과정 동안 짧게나마 1,2,3을 고루 경험해 본 다소 특이한 케이스다. 아, 물론 저 세 가지 구분을 무색하게 하는 커다란 변수가 하나 있으니... 바로 아이의 유무다. 그 얘기는 차후에 하고 일단 지금은 출국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남편을 따라 처음 미국에 온 게 2013년 12월 말이다.  8월에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4개월 정도 한국에 남아 통번역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무리했다. 12월 중순까지는 꼬박 기말고사 및 과제, 졸업 시험에 여념이 없었다. 그 이후 잠시 귀국한 남편과 합심하여 뱃짐 싸서 보내고 전셋집 빼고 각자 본가에 남은 짐 이사 등은 물론, 양가의 가족모임까지 빽빽한 일정을 소화했다. 2주가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휘몰아치는 일정 덕에 심란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그때는 미국 생활이 이리 길어질 줄도 몰랐기에 그저 좀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당시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며 신청했던 자비 연수 휴직 가능 기간이 남아 있었다. 휴직 연장을 위해 1년 과정의 UCLA Extension 마케팅 과정을 신청했다. 풀타임 학생비자(F1)가 필요한 과정이었는데, F1 비자로는 학업 시작 1달 전에만 입국이 가능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전에 받아 놓은 관광 및 방문 비자가 있었다. 일단은 그 비자로 와서 1-2달 내에 다시 F1 비자를 받으러 한국에 다녀오기로 했다.

12월 28일 토요일 오후. 인천 공항에 도착해 출국 수속을 하는데 직원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돌아오는 티켓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셨다. 한국 다녀올 날짜를 아직 정하지 못해 엘에이에 가서 왕복 티켓을 살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출국이 불가능하다고 (정확히는 미국 입국이 거부되어 돌아와야 할 거라고) 했다. 일찍 갔으니 망정이지... 잘못하면 국제적으로 헛걸음을 할 뻔했다. 공항 한편에서 급하게 2월 중순쯤으로 LA발 한국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니 미국에 가는 게 실감이 났다. 



12/28일 토요일 오전 10시 반. 12시간 넘게 비행기를 탔는데도 엘에이는 여전히 토요일이라니, 간만의 외국행이라서 그런지 새삼 신기했다. 기나긴 수속을 마치고 나온 엘에이 공항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와이파이가 생각보다 잘 터지지 않아서 놀랐고, 화장실이 더러워서 또 한 번 놀랐다. 번쩍번쩍 빛나는 인천공항에 비해 굉장히 낙후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바깥 풍경은 마냥 아름다워 보였다. 야자수가 늘어선 도로 위에 떨어지는 햇살이 눈부셨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공항으로 우리를 맞이하러 나와준 남편 동기의 차를 타고 바로 UCLA 가족 기숙사로 향했다.

미리 배정받은 3층 아파트에 이민가방을 집어넣고 숨 가쁘게 달려간 곳은 이케아와 한인마트. 그렇게 반나절만에 책상, 식탁 등의 가구와 나머지 잡다한 살림살이를 마련했다. 어둑어둑해질 때야 집에 다시 도착했다. 빈 집에 덩그러니 있던 커다란 이민가방 옆에 이케아 박스, 밥솥, 쌀, 양념 등을 옮기고 나니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아무리 카펫이 깔려 있다고 해도 냉기가 꽤 많이 올라오는데 여기서 어떻게 자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혼자 이사를 나가던 옆집 사람이 아마도 처치곤란이었을 소파 침대를 우리에게 주었다. 덕분에 차가운 바닥에 자지 않아도 됐다. 짐 한복판에 소파 침대 위에 가져온 이불을 깔고 누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남편과 나는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엘에이에서의 첫날이 지나갔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2월까지는 여행자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가 컸다. 본업은 있으나 휴직 중인 2번 유형의 유학생 부인. 복작복작한 곳에서 벗어나서 한가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고 하고 싶지만, 실제 내 삶은 1번 유형에 가까웠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의뢰받은 단기 번역 프로젝트 납기가 1월 중순, 수정사항 반영이 말일까지였다. 그러고 이제 좀 한숨 돌리나 싶었는데 웬걸. 이번에는 2월 말에나 올 예정이었던 뱃짐이 예상보다 1달 일찍 들이닥쳤다. 침대, 책상, 화장대 등 큼직한 것은 물론, 책과 부엌 살림 및 다른 자잘한 짐들로 가득 찼던 뱃짐은 부치는 데만도 300만 원이 넘었었다. 2월 한국행 전까지는 좀 쉬나 했더니... 그건 또 언제 다 정리한단 말인가. 휴. 어째 쉴 팔자는 아니구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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