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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Apr 27. 2022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 9

십 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에 오래 소홀했다. '극한 직업 유학생 부인'의 엘에이 편은 대체 언제 올라오냐던 볼멘소리를 뒤로 한 지도 한 달은 넘은 것 같다.
2012년 4월 7일 토요일, 1교시 국어 작문 수업 시간에 서둘러 썼던 글을 조금 수정해서 여기에 갈무리한다. 본편은 아니지만, 프리퀄의 프리퀄 정도라고 해두자.


Feat. 봄여름가을겨울의 '십 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노래인데, 지금 들으니 가사와 내레이션이 더 착착 감긴다.) 특히 도입부 "내겐 더 많은 날이 있어 무슨 걱정 있을까 하루하루 사는 것은 모두 기쁨일 뿐이야"



하늘도 무심하시지. 꿈뻑꿈뻑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겨우겨우 몸을 움직여본다. 오른쪽 어깻죽지부터 발끝까지 저리다. 이 화창한 봄날의 주말, 1교시에 학교를 가는 것만으로도 서러운데, 심지어 몸마저 말을 듣지 않다니. 서른 두 해 동안 맞았던 생일, 뭐 꼭 즐거운 기억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좀 가혹하게 느껴진다. 윤활유가 필요한 <오즈의 마법사>의 양철 인간처럼 삐그덕 삐그덕, 오른쪽 골반을 중심으로 허리에서 다리까지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일어나기 위해 잠깐 뒤척였을 뿐인데 찌리리릿 피뢰침에 번개를 모으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전신이 저리다. 침대를 짚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부실한 내 몸뚱어리를 일으킬 수 있었다. 7시. 찬찬히 준비하고 가면 되겠다.

 

…… 알람이 울부짖는다. 분명 아까 눈을 떴었는데. 봄날의 날씨라든가 생일, 허리의 통증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이 시계는 야속하게 7:40이라는 숫자만 깜빡대고 있다. 야박한 것. 몇 분만이라도 좀 천천히 알려줄 것이지. 뜨거운 물로라도 좀 지져볼까나. 억지로 한 발 한 발, 오른쪽 다리를 양팔로 거들어 옮기며 겨우겨우 걸음을 걷는다. 엎어지면 코도 아니고 배꼽이 닿을, 안방에서 화장실까지가 천릿길이다.

 

샤워를 끝내니 조금은 나은 것도 같다. 화장실에 나오는 순간, 찌리릿. 하긴, 뜨거운 물 조금으로 괜찮아질 정도였으면 애초에 그렇게 아프지도 않았겠지. 파스로 신중하게 허리부터 허벅지까지 도배를 하고 입을 옷을 고른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30초나 투자해서 고민해보지만…… 봄날, 화사한 원피스 안녕. 너는 오늘 못 입을 운명인 것 같다. 천근만근인 다리를 들어 올려 청바지 안에 꿰어 넣는다. 화장? 화장은커녕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다. 그래도 날로 늘어가는 기미 주근깨라도 좀 방지할까 싶어 선크림이라도 처덕처덕 바르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남편이 떡 몇 조각을 급하게 입안에 넣어준다. 그래. 제대로 된 아침은 못 먹어도 뭐라도 먹어야지 진통제를 먹지. 전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찾아 급하게 입안에 털어놓고 학교 갈 짐을 주섬주섬 꾸린다. 8시 17분. 다행히 남편이 생일선물 겸 오늘은 학교에 태워다 준다고 했었지. 그래도 차를 타면 금세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빨리 가야지. 그러나 마음만 앞설 뿐, 카드지갑이 보이지 않아 한참을 찾고 있는데 남편이 먼저 나간다고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오니 어젯밤 분명 아파트 근처에 주차했다고 좋아했던 차가 이역만리 너머에 있다. 아... 좀 가까운 데로 옮겨놔 주지. 낑낑 다리를 끌고 차에 어렵게 올라탄다. 먼저 나간 남편이 차에 타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있다. ‘한국외대’ 28분. 휴. 늦진 않겠군.

 

출발을 하는데 차에서 나는 소리가 또 심상치 않다. 97년식 빨간 아토스. 사실 경로 우대해줘야 마땅한 차다. 폐차하고 싶은 유혹에 몇 번 시달렸으나 그래도 여기저기 날 날라주느라고 고생했는데 이제 와 고려장을 하는 것 같아 꾹 참았건만, 오늘 내는 소리는 유난히 애달프다. 주인 몸 아프다고 같이 울어라도 주는 걸까.

 

속도계를 흘깃 살펴보니 50km/h. 남편이 토플 리스닝 예제를 들으면서 따라하고 있다. 공부를 한다는데 마땅히 갸륵한 마음이 들어야겠으나 내심 마뜩잖다. ‘아니, 길치에 운전도 미숙한데, 이걸 들으면서 빨리 갈 수 있어? 늦으면 어떻게 해. 70 정도는 밟아야지 60도 아니고 50이 뭐야.’ 속사포 랩으로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겨우 누르고 영업용 미소를 짓는다. 그래. 데려다주는 게 어디야. 토요일 아침의 단잠을 포기하고. 자기도 시험 얼마 안 남았으니까 불안하겠지.

 

“성수대교, 동부간선도로로 우측방향입니다. 이어서 좌측입니다.” 가냘픈 소리가 들리나 싶었더니 어느새 우렁찬 목소리로 바뀐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청담동. “어? 이게 왜 이러지? 우측방향이라고 했는데……” 남편의 풀 죽은 목소리에 짜증을 고이 접어 꾹꾹 넣어놓는다. 유턴을 하고 나니 자생한방병원이 보인다. “저기 데려다주려고 그랬구나.”라고 농담을 건네보지만 이미 마음은 다급하다. 결국 “좀 빨리 가면 안 될까. 한 7-80 밟자”를 불쑥 뱉는다. 언짢아진 목소리를 느꼈는지 남편도 정신 사납다며 리스닝 파일을 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학교 앞. 8시 56분. 휴. 다행이다.

 

강의실 올라가는 게 에베레스트 산 등정만큼이나 힘들지만. 그래도 9시 정각. 칠판에 첫사랑/학교 오는 길이라고 쓰여있다. 아. 오늘 이걸 쓰기 위해 내가 아팠었나 보다. 글을 쓰다 말고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문자를 남긴다. ‘고마워. 수업 세이프!’



10년 후 이 글을 보니 참 우습다. 기를 쓰고 1교시 수업에 갔던 그 봄날 바로 다음 날, 나는 결국 허리 디스크로 한 달 동안 입원을 했다. 멀티태스킹을 못 하는데도 운전하며 토플 예제 리스닝을 하던 남편은 어느새 유학생활을  마치고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간간이 번역을 하긴 했지만, 그 시간의 대부분을 그저 '유학생 부인'으로 살아왔다.

"왜 그토록 많은 외로움의 낱말들이 그 위에 덮여 있는지"라는 김종진 님의 내레이션이 흐른다. '극한직업 유학생 부인'은 내 외로움의 낱말들이 적히는 글일까? 그저 외로움과 고됨을 토로하는 글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보니 더 고민이 된다. 유학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혹은 유학생의 동반자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걱정 어린 충언을, 혹은 그 세월을 겪어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보내고도 싶다. 필력이 딸리니 그걸 다 섞기란 쉽지 않다. 사실 일단 쓰면 되는 문제인데, 일상과 크고 작은 일들에 치이다 보니 '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지금도 마감이 얼마 안 남은 번역 프로젝트 중간에 잠시 딴짓 중이다. 정답이 있는 글쓰기에서 잠시 숨을 돌렸으니 이제 다시 번역으로 돌아가야지. 5월 중에는 적어도 두 편은 쓰겠다는 다짐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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