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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닷빛 Oct 26. 2022

세상 귀한 나의 딸에게

귀엽고 귀중하고... 귀찮은

 월요일 오후 3시 반
 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한달음에 계단을 내려온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처럼 절절하지만, 고작 집에서 나간 지 3시간 만에 돌아왔는데...
 

“엄마~~~ 보고 싶었어!”

“나도!”

하고 꼭 안아준다.


“엄마 눈 감아 봐.”

“왜?”

“감아 봐. 선물이 있어.”

“알았어.”


  I Love You라는 글씨와 하트가 그려진 큰 종이 하트 반지를 손가락에 껴 준다.
 

방금 집에 들어오기 전에 심호흡을 하며 웹툰을 하나 보고 왔는데... 조금 뜨끔하다.
 야... 이러면 엄마가 뭐가 되니.
 
 ###

금토일.

금요일에 아이가 살짝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또 시작했구나. 9월 초부터 벌써 세 번째 감기다. 여태 학교에 2번, 주말에 있는 한국학교에 1번 결석을 했다. 물론 엄마 아빠가 옮는 건 이별 장면에서 비가 오는 것처럼 당연한 공식 수순이다.
 
 아이 탓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처음 열이 오를 때는 너무 안쓰러워서 한 몸처럼 뒤엉키는 아이를 나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자칫하면 코도 서로 닿을 거리에서 목구멍을 정확히 조준한(?) 기침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감기에 옮아 꼬박 2주를 아프고 나서 다음부터 아플 때마다 딸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우리 너무 가까이는 있지 말자. 엄마 또 감기 옮으면 어떡해. 시아도 엄마 아프면 싫지? 그러니까 엄마 저쪽으로 돌아누울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습관은 무섭다. 무릎에 올라타 마주 보고 꼭 끌어안는 포즈가 시아의 기본자세다. 평상시에도 하루에 두세 번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는다. 아프면 워낙에 칭얼대고 엉기니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이제는 혼자 자는 게 익숙하지만, 아플 때는 꼭 우리 침대로 넘어온다. 일요일 밤에도 마찬가지였다.
 
 한창 남편과 여행 계획을 세우던 일요일 밤 11시,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이의 방에 들어가는데 느낌이 왔다. ‘아. 오늘은 망했구나.’ 아니나 다를까. 잠꼬대를 하며 서럽게 우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달래다가 결국 우리 침대로 데려온다.
 
 ###
 월요일 아침 7시
 총 수면 시간은 8시간 정도였는데 어째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아침 7시까지 대여섯 번은 깬 것 같다. 발로 채어서 한두 번, 이불을 빼앗겨서 두어 번, 기침 소리에 놀라서 두어 번. 일어나 보니 시아는 대문자 H의 가운데 가로획처럼 이불 위에 올라가 대자로 뻗어있다. 킹 사이즈 침대가 무색하게 밀려나다 못해 얇은 L자 모양으로 옆으로 누워 자던 나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이 뻐근하다.
 
 겨우 오늘 학교에 못 간다는 메일을 보내고는 다시 자리에 눕는다. 남편도 시아도 더 자는 것 같더니 10분도 채 안돼 시아의 입에서 언제나처럼 B-word가 나온다. “I’m bored. It’s time to wake up.”
 

자꾸 엄마 일어나라고 하고 내 품에 파고드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말로 시간을 벌어본다. “아이고 우리 귀한 시아~~” “귀 귀 귀자로 시작하는 거 다 해볼까? 귀여운, 귀중한, 귀...귀찮은? 아이고야, 본심이 나와버렸네? 시아야, 엄마 너무 못 잤어. 조금만 더 자게 해 줄래?”


빨리 처리해야 하는 일들에 짤막하게 답변을 남긴 채 다시 눈을 감는다. 아무도 없는 큰 침대에서의 아침 꿀잠은 그야말로 너무 달콤하고 너무 짧다. 5분이나 지났을까 싶었는데 방문을 걷어차고 기운차게 뛰어오는 시아가 보인다.
 “벌써 아침 다 먹은 거야?”
 “응! 아빠가 초코 미숫가루 타 줬어. 엄마도 뭐 먹어야 하지 않아?”
 
 오늘 하루도 길겠구나. 어차피 일어나야 할 것을 알면서 20분만 더 눕게 해달라고 남편과 아이에게 애원한다. 다행히 오늘은 내가 절대 미룰 수 없는 일로 외출해야 해서 남편이 재택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노트북을 챙겨 마루로 나가고 시아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Fine.”이란 말을 남기고 잠시 나간다.


20분 후, 알람이 울린다. 이만하면 선방했지. 남편도 시아도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몸을 일으킨다. 아직도 천근만근 몸에 목도 괜스레 따끔거리는 것 같다. 아...


###
 월요일 오후 12시 35분
 서둘러 파스타를 만들어 상을 차리곤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길을 나선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영주권 신청 때문에 지문 날인하러 가는 길이 이렇게 즐거울 일인가. 오디오북을 틀어놓고 운전한다. ‘콩순이’도 아니고 ‘페파피그’도 아니고 오롯이 내 취향인 오디오북을 듣는다니. 햇살이 유난히 눈부시다. 20분이 짧고 짧다.
 
 지문 날인과 사진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낸다. 배가 아직 고파서 후딱 뭐 먹고 장 보고 차에 기름을 넣고 가겠다고. 추가 자유 시간 확보다. 야호.



 ###

월요일 저녁 7시 30분.

반지의 감동은 감동이고, 오늘 하루가 긴 건 긴 거다. 20분만 더 잘게라고 애원하던 20분은 눈 깜짝할 새지만 시아 한국학교 숙제를 봐주는 20분은 20년 같았지만... 괜찮다. 이제 조금만 버티면 해방이다. 오늘은 어서 씻기고 일찍 재워야지.


30분 만에 후딱 씻기고 재우고 7시 57분에 재우기 성공! (이게 얼마만인가...)
심플 스텝스 스태프 미팅 전까지 3분이 남았다.


하루에도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여러 번 경험하게 하는 나의 귀한 딸 시아야. 시시때때로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너라는 존재가 있어서 엄마는 참 행복해. 귀엽고 귀중하고 귀찮은 그 모든 모습 그대로 너를 사랑해볼게. 그래도 오늘은 일찍 자 줘서 쪼끔 더 사랑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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