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의 언어

<나는 다른 언어로 꿈을 꾼다 >

by 우장산 오소리

영화적 다양성에 항상 목말라하던 요즘, 꽤 독특하고 접해보지 못한 작품이 등장해서 얼른 가서 보았다. 멕시코에서 왔고 선댄스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도 받았으며 사라지는 언어에 대한 내용이라니. 다양성의 끝자락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느낌부터 말하자면 내 예상과는 다른 영화였지만 이런 방향마저도 인상 깊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예고편과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두 노인은 젊은 시절의 기억 때문에 티격태격하다가도 결국은 다시 사이가 좋아지고 사라지는 시크릴 어를 다시 살려낸다...라는 얘기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훈훈하고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점이 영화를 볼 때는 의아했지만 다시 곱씹어보면 여운을 남기는 것 같다.



이 작품 속에서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세계를 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류와 비주류로 나뉠 수 있는 이 세계. 극 중에서 에바레스토라는 노인의 손녀는 라디오로 영어를 가르치고 자신도 언젠가는 미국으로 가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시크릴 어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영어는 잘 알다시피 전 세계의 절반이 넘게 사용하는 주류 언어이다. 그에 비히면 시크릴 어는 그에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누가 봐도 극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은 두 노인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에바레스토는 시크릴 어도 하지만 스페인 어도 능통하다. 하지만 친구인 이사우로는 시크릴 어만 사용하는 백 퍼센트 현지인이다. 때문에 에바레스토는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만 이사우로는 자신과 말이 통하는 에바레스토 말고는 소통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부분이 후반부의 예상치 못한 전개에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영어나 스페인어는 수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만 시크릴 어는 단 둘이서만 사용하기에 한 사람이 그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둘이 같이 있어야만 그들의 세계가 완성될 수 있는 것이고 오직 그 둘에 의해서만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 작품도 작품 속 시크릴 어 같은 위치일 것이다. 주류인 할리우드와는 다른 그들만의 느낌을 가진 비주류이기에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안과 숲 속 마을을 배경으로 한 풍경과 특유의 음악, 예상과는 다른 결말, 후반부에는 점점 신비로워지면서 아련해지는 분위기까지.

모두에게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다양성을 원한다면 새로운 감각을 원한다면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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