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판단해버리기 전에 생각해 볼 것
점심 때가 조금 지난 무렵에 도서관에 갔다. 주말이라 그런지 빈자리 하나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가 구석에 마련된 소파존으로 갔다. 거기도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무거운 짐을 이고지고 자리를 찾는 중에 눈에 들어오는 중년 남자 한 명. 그는 옆 소파에 자기 가방을 올려놓고 소파에 등을 기대 자고 있었다. 혼자서 두 좌석을 차지하고 있던 셈. 공공장소에서 이런 똥매너는 뭐람. 잘 거면 집에서 자던지, 아니 가방이나 내려놓고 자던지. 그가 눈을 감고 있었으므로 나는 눈을 흘기며 그의 앞을 지나쳤다.
가까스로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옆 자리에 앉은 중학생 소녀 두 명이 계속 떠들었다. 의자가 좀 불편해 허리도 아팠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소파에 앉은 사람들이 무척 편해보였다. 자리를 옮기고 싶어 틈나는 대로 살폈지만 자리는 여간해서 나오지 않았다.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편히 앉아 책을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투덜거리며 일어나 화장실에 가고 있을 때였다. 그 남자 옆에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남자는 주섬주섬 가방을 치우고 있었다. 저렇게 쉬운 거였다고? 그냥 가방 좀 치워주시겠냐고 말해볼 걸 그랬나.
화장실에 가며 생각했다. 어쩌면 남자는 빈자리가 무척 많았을 때 도서관에 와서 무심결에 가방을 소파에 올려놨을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매너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니까.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가득 찰 때까지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른다. 그냥 살짝 가서 "여기 좀 앉아도 될까요?"라고 말하면 아차차,하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가방을 치워줬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아저씨에게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 사과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매너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을 찍어버렸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그러고보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고 먼저 마음의 문을 닫았던 적이 많았다. 저 사람은 원래 저렇다고 생각하면서. 사과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사람을 미워할 명분을 계속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내가 받은 피해, 내가 받은 상처에 대한 분풀이로 그 사람을 미워하기 위해 그가 잘못을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건 아닌지.
아이들의 갈등을 보며 자주 생각했다.
"선생님, OO이가 저 밀치고 갔어요."
아이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짜증나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한다. 아이들이 나에게 와서 말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 혼내달라는 것이다. OO이를 불러 물으면 자기가 밀쳤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에게 와서 말하기 전에 OO이에게 먼저 가서 "네가 나를 먼저 밀쳐서 속상했다"고 말하라는 훈련을 엄청 많이 시켰다.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도 공부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말해놓고 내가 그러고 있었구나. 고자질 할 사람만 있었다면 나도 그리했을 것이다. "저 사람이 글쎄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는요..."
내가 잘못했을 때 누군가가 그 잘못만을 가지고 나를 판단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속상할 것 같다. 잘못에 대해 사과할 기회를, 그래서 내 잘못을 인지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준다면 좋겠다. 나부터 그리 해봐야지.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했다면 사과할 기회,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를 주자. 나도 실수하니까. 나도 그런 기회를 받고 싶으니까. 뭐, 기회를 줬는데도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건 욕 먹어도 싸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