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쓴다

무엇을 하든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by 우연과 상상

새학교에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진눈깨비였던 눈이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던 중 지름길을 발견했고, 멀리 익숙한 도로가 보였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길을 따라 쭉 걸었는데 나오라는 버스정류장은 나오지 않고 웬 산업센터와 육교가 나왔다. 처음보는 도로를 익숙하다며 착각한 것이다. 날은 춥고 눈은 오고 버스 정류장은 멀어졌고. 집으로 가는 길을 찍어보니 40분 걸으란다. 그냥 걷기로 했다. 걷는 것에 큰 부담이 없었던 이유는 팟캐스트 때문이었다.


재미난 팟캐스트가 있으면 나는 몇 시간이고 걸을 수 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여 많이 걸어야 할 때(카드를 두고 왔다던지, 버스가 너무 늦게 온다던지...)는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에피소드를 또 듣는다. 오늘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든 김초희 감독과 강맑음 배우가 나오는 팟캐스트를 선택했다. 영화도 무척 재밌지만 두 분이 정말 케미가 잘맞아서 대화가 너무 즐겁다. 나는 귀에 에어팟을 꼽고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눈을 맞지 않게 우산을 이리 저리 기울여가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눈 맞으며 낄낄대는 여자를 보고 사람들이 어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재밌는 건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마르고 닳도록 들은 에피소드임에도 오늘따라 유난히 귀에 들어오는 김초희 감독님의 말이 있었다. 진행자가 어떻게 수년 동안 그렇게 한결같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김초희 감독님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그냥 할 수밖에 없어서 한 거라고. 그걸 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으니까 했던 것 같다고. 스물 셋에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녀는 사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첫 영화로 데뷔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20년동안 무명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빛을 보게 된 스타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 세월을 견뎠을까 . 그런데 견디는 것이 다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걸 했을 때 가장 나다울 수 있으니까 그 일을 했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흐른 것이라고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사실 아무런 보상없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참기만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명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걸 했을 때만 내가 될 수 있었으니까.


오늘 같이 소설을 쓰는 문우에게 카톡이 왔다. 이 분은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모임을 주도하는 리더십이 탁월하고, 매사에 적극적인 분이다. 그런데 나에게 보낸 카톡 내용은 평소 그녀의 모습과 조금 달랐다. 지난 번 받은 합평에서 안 좋은 소릴 들어서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저번에도 계속 쓰는 게 맞는 지 고민하셨던 기억도 났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 분께 합평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하루에 두, 세 시간 자며 소설 원고를 고쳤고, 나는 내 작품에 꽤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고 자다가도 이불킥이다. 그날 두근두근하며 신촌에 있는 강의실로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심 선생님께 칭찬 받기를 기대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선생님은 정말 조심스럽게 내 작품에 대해 합평을 해주셨지만, 그럼에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소설가 님이 내 교만과 칭찬 받고 싶은 욕망을 꿰뚫어보고 계시다는 걸. 수업 내내 얼굴이 달아올라 귀까지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소설을 그만쓰자고 생각했었다.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다. 그만두겠다더니 여전히 쓰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이렇다 할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모전 당선은 커녕 최종심에도 올라가지 않았으니까. 반면, 나와 함께 공부하는 문우는 난생 처음으로 투고한 공모전에서 최종심에 올라갔고, 본인은 심지어 어느 신문사에 냈는 지 잊어버리고 있다가 발표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 결과가 나올까 노심초사 기다리다가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혹시 당선자들에게 연락이 돌아갔냐고 물어보곤 했었는데. (보통 공모전은 최종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당선자들에게 미리 연락을 해준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정말 재능이 없는 지도 몰랐다. 현실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소설을 쓰겠다고 설치느라 들어가는 강의비에 책 값에 시간에... 효율성을 생각하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계속 소설을 쓰고 있고, 아직까지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왜? 나는 글을 쓸 때만큼 몰입을 할 수 있는 일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다. 글을 쓰는 게 제일 좋다. 글을 쓸 때 나일 수 있다. 살아 있다. 그러니까 쓴다. 내가 들인 시간 만큼의 시간이 더 지난다 해도 나는 여전히 쓰고 있을 것 같다.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문우에게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 글을 쓸 때 나일 수 있다면 그냥 같이 쓰자고. 가장 나다울 수 있는 시간을, 욕심과 세상의 기대때문에 포기하지 말자고.


글을 그만둬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고, 글을 써도 시간은 흘러갈 것이다. 무엇을 하든 시간은 흘러간다. 그래서 나는 쓴다.

작가의 이전글사과할 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