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현실적으로 꿈꿀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미래
모두가 끔찍하다고 말해도 끔찍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다른 걸 보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하는 일이야.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 다른 것에 집중할 때, 너는 네 인생을 바꿀 수 있어. 그 다른 것이 바로 꿈이야. 꿈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꿈의 내용을 바꿀 수 있어. 알겠니?
<조금 뒤의 세계>, 김연수
이 소설에는 동사의 어미를 변형한 문장들이 자주 나온다. 울지만 울고 있지만 않다, 무섭지만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렵지만 두려움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에는 현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끔찍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울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무섭지 않다는 게 아니라, 두렵지 않다는 게 아니라, 그건 분명한 사실이나 그렇지만은 않은 현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말은, 세상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나에게도 꽤 수긍이 가는 메세지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가만히 되뇌이다 보면, 정말 그렇지만은 않았던 일화들이 떠오른다. 무섭고 끔찍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 대척점에 언제나 그렇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고통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 또한 분명한 진실이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 작가가 좋다. 현실을 직시하되(울고, 무섭고, 두렵고, 끔찍한), 우리가 놓치고 있던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하게 하도록 함으로써(그러나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꿈꿀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지점에 독자를 데려다 주기 때문이다. 미래를 막연히 낙관했다면 오히려 반항심이 먼저 치고 올라왔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야'라는 언뜻 말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말은,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지친 하루 끝, 세상이 온통 거짓과 불신, 절망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질 때 이 말을 되뇌어보자.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니야.' 거짓말처럼 몇 가지 장면들이 떠오르며 마음 속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온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