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어떤 배움이 일어나고 있을까
3년 전 맡은 아이 중에 방금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있었다. 공부도 잘했고, 도서관 대출왕도 여러 번 차지할만큼 책도 많이 읽었고, 발표도 잘했고, 얼굴도 예뻤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깨끗하고 순수했다. 같은 2학년인데 행동은 꼭 친구들보다 나이 서너살은 더 먹은 것처럼 의젓했고, 소외된 친구들을 잘 챙겼다. 사서 선생님, 영양사 선생님, 보건 선생님에게까지 칭찬 받을 수밖에 없던 아이. 아이를 가까이 지켜보며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아이는 친구들 앞에서 절대 울지 않았다. 대신 울고 싶을 때 울음을 꾹꾹 참은 다음 나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화장실에서 다 울고 난 뒤에 눈물을 깨끗하게 닦고 교실로 돌아왔다. 하루는 그런 아이가 안쓰러워 화장실에 가겠다던 아이를 붙잡고 '~해서 속상했지'하고 마음을 헤아려 줬는데, 갑자기 아이가 내 품에 안겨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3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대치동으로 전학을 갔다.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아이었으니 부모님도 아이의 잠재력을 뒷받침해주기 위해 그런 선택을 내리신 것 같았다. 나에게 찾아와 이사를 간다고 말했을 때, 참 많이 아쉬웠다. 그러다 오늘 우연히 아이의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선생님이 1학년 담임, 내가 다음 해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이야기가 나왔다.
"OO이 기억하시죠. 너무 예뻤잖아요."
"어우, 알죠. 진짜 그림같은 아이였어요."
"OO이가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서 너무 아쉬워요."
"맞아요. 예쁜 아이들은 다 대치동으로 이사를 가네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유난히 감수성이 여리고 생각이 깊었던 제자 한 명도 중학생이 되기 몇 달 전 대치동으로 전학을 갔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될 지 정말 궁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만큼, 미래가 기대되던 아이였다. 그때 내가 동료 선생님께 ㅁㅁ이가 전학을 가서 아쉽다고 말했더니, 그런 아이들은 가야한다고, 대치동에 가기에 이미 늦은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그림 같은 제자들을 대치동으로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다. 도대체 대치동이 어떻길래 학교의 보물들을 다 쏙쏙 빼내어 가는 것일까. 대치동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 이미 수학의 정석을 끝내고 중학교에 가서는 대학 수학을 푼다고 하던데 그 말이 정말 사실일까 궁금해졌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강남의 모 고등학교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일이 있었다. 그 아이는 나와 같은 지역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강남으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던 아이였다. 잘 놀고, 공부도 잘하는 것으로. 그 아이는 나를 몰랐으나 동네에서 나름 유명인사였기에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이는 싸이월드 일기장에 자주 자신의 심경을 남겼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오면 여기 있는 아이들은 수학 문제집 한 권을 끝낸다고 했다. 잘 노는데 똑똑하기도 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샀던 아이였는데, 그곳에 가보니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들이 공부까지 기를 쓰고 해 좌절감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일기에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어른이 되고 보니, 공부와 성적은 부분적으로는 영향을 줄 수 있겠으나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는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이가 공부와 성적 중심으로 돌아가는 환경 속에서 미래의 또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대치동으로 간 제자들은 둘 다 똑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능이 높았다. 문해력, 암기력, 집중력도 높았고 뭘 가르치든 스폰지처럼 쏙쏙 빨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이 아이들의 미래가 기다려졌던 건, 단순히 지능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사소한 일에서도 '호기심'을 느꼈고 배움 자체를 즐거워했다. 물론 결과물도 뛰어났다. 창의성과 호기심, 배움에 대한 열정같은 것들은 쉽게 획득할 수 없는 가치임이 분명한데, 대치동이라는 곳이 아이들의 그런 자질을 잘 가꾸고 배양할 토양이 되어줄 수 있을까. 함께 점심을 먹었던 동료 선생님들이 입을 모아 똑똑한 제자들은 다 대치동으로 갔다는 얘길 들으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최근 개그우먼 이수지가 대치동 맘 브이로그 영상을 올려 연일 화제가 되었다. 기사로도 작성되고 조회수도 엄청난 것을 보면 대치동 맘의 현실이 개그의 소재로 꾸며진 내용만은 아닌 것 같다. 대치동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뛰어난 아이들이 전부 모였을테니 서로 자극을 주고 받으며 쑥쑥 성장하고 있겠지 싶다가도 뛰어난 친구들 사이에서 좌절하고, 눈물을 참고 있지는 않을런지 걱정도 된다. 최근 읽은 책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아이들의 마음은 폐허가 되어 가는데 우리는 춤을 추네'. 공부로 성공하는 길도 물론 좋지만, 공부를 잘하지 못해도 내가 걸어갈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스스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근데 정말 대치동의 생리가 궁금해졌다. <아무튼, 대치동> 나오면 대박날텐데 누가 좀 써줬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