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 먼저 먹는 삶

이제는 디저트를 먼저 먹어야 할 차례

by 우연과 상상

급식에 후식이 나올 때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밥 한 술 뜨기도 전에 홀랑 후식부터 까먹는 아이와 맨 마지막에 먹는 아이. 오늘 초코가 발린 과자가 후식으로 나왔다. 역시나 두 파로 나뉘었다. 식판에는 여기 저기 갉아 먹힌 디저트의 흔적들이 보인다. 한 입만 먹고 내려놓겠다는 다짐은 번번히 실패한다. 반면 꿋꿋하게 디저트에 손도 대지 않고 마지막에 느낄 달콤함을 위해 미역국에 밥을 말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때 A가 호기롭게 디저트 껍질을 깠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냄새만 맡아봐야지."하며 자기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시선을 옮기자마자 A는 디저트를 홀랑 다 먹어버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디저트를 가장 늦게 먹는 아이였다. 좋은 걸 아껴두었다가 맨 마지막에. 핫도그의 소시지는 빵을 다 갉아먹은 뒤에 먹었고, 파전을 먹을 때도 밀가루 반죽만 있는 부분을 먼저 먹고 오징어가 몰려 있는 부분을 나중에 먹으며, 엄마는 외계인에 있는 초코볼도 한 번에 두 개 이상 먹지 않도록 조절한다. 급식에 디저트가 나올 때도 마찬가지. 다른 아이들이 디저트의 달콤함을 먼저 맛보는 사이, 나는 목 막히는 밥과 맛없는 반찬을 꾸역꾸역 먹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디저트를 다 먹고 남은 것은 김치와 비지찌개 뿐이라는 쓰디 쓴 현실을 마주하고 있을 때, 나는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디저트를 한 입 베어문다. 디저트 먹는 순서야 말로 인간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아닐까. 내가 디저트를 맨 마지막에 먹었듯 나는 인생도 그렇게 살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올거라 믿으며 힘든 현실의 꾸역꾸역 참고 견뎠다.


그런 내가 디저트를 먼저 먹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몇 달 전이었다. 개그우먼 김숙이 한 팟캐스트에서 이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듣고 나는 엄청난 인사이트를 얻었다. 맛있는 거 먼저? 나중?에 대한 물음에 김숙이 말했다.

"무조건 먼저지. 난 맛있는 건 무조건 먼저 먹어."

여기까진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아끼다 똥 된다,라는 말을 들 수 있겠다. 나 역시 그녀의 말을 미래는 알 수 없으니 현실을 희생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숙은 전혀 다른 근거를 제시했다.

"배 고픈 상태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랑, 배가 잔뜩 부른 상태에서 맛있는 거 먹을 때랑 같나? 그러니까 무조건 먼저 먹어야 한데이!"

백 퍼센트 맞는 말이다. 배고플 때 먹어야 무조건 맛있다! 맛있는 걸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디저트를 먹어버린 A에게 아이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야! 그거 밥 다 먹고 나서 먹어야지! 선생님 A가 과자부터 먹었어요. 그럼 안 되죠, 네?"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디저트를 먼저 먹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숟가락 가득 밥을 떠 입에 넣고 있었다. 그러게, 얘들아.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어쩌면 A가 똑똑한 것일 수도 있어. 차마 그 말은 못하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디저트 먹고도 밥 다 먹을 자신 있는 사람은 먼저 먹어도 좋아요."


고생 끝에, 노력 끝에, 인내 끝에 얻는 성취의 기쁨은 무척 크다. 그러나 때로는 좋은 경험을 먼저 해보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 좋은 경험을 일찍 하는 것이 때로는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줄 수 있고, 그것이 또 다른 길을 내주기도 하니까. 지금까지는 달콤한 결실을 위해 인내하고 살았으니 이제는 다르게 살아보려고 한다.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경험의 기회가 있다면 도전하며 살고 싶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디저트 먼저 먹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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