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함께 있는 이유
“그러니까 2학년이 지금 분위기가 엉망진창이라고요. 이, 정난주 이거 어떡할 겁니까?”
교감의 일갈에 아침부터 교무실이 찬물 끼얹은 듯하다. 간밤에 정난주가 또 한 건 한 모양이다.
“정난주가 이렇게 날뛰도록 놔둘 겁니까? 예? 2학년부장!”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교감 선생님...”
민규는 허리가 폴더처럼 접히도록 교감 앞에 읍소했다. 속으로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으리라...
“하, 참! 학교가 뉴스에 나도록 놔둬야 하다니... 이건 학교폭력위원회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라고요! 하...”
교감이 이렇게 흥분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얼고의 소문난 일진인 정난주가 간밤에 친 사고는 ‘한 건’이 아니었다. 편의점에 세워진 배달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지나가던 행인을 쳐서 다치게 하고, 심지어 무면허 운전이 적발되어 현재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피해자 측에서 학생이라고 합의를...”
“다친 사람만 피해자가 아니잖습니까! 배달 업체도... 어휴, 내가 미쳐.”
괜히 말을 보탰다가 교감의 열불을 더 채워버린 민규였다.
“...어쨌든, 학생들이 이런 분위기 타지 않도록 단속들 잘하세요. 선생님들이 잘해줘야 합니다. 귀찮고 어려운 일은 관리자들이 알아서 수습할 테니 나머지 학생들 단단히 붙들어 매 주십시오, 선생님들!”
교감의 신신당부 끝에는 교사들의 맥없는 대답이 이어졌다. 지금보다 어떻게 더 잘하란 말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학생들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튀어갈지 모르는데. 그중에서도 민규의 뱀눈은 유독 더 번뜩였다.
쾅!
교실 문이 거칠게 열렸고, 화기애애하던 교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뱀눈이 돌아버린 날이면 알아서 기어야 했다. 학생들은 차마 뱀눈과 아이컨택을 하지 못하고 스멀스멀 자리로 기어들었다.
“소문들 들어서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숨긴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미 SNS 등지로 퍼져 정난주의 소문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니 아예 패를 까고 본다. 그것이 민규의 방법이었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하고 따라 하려는 새끼들은 애초에 답이 없는 거야. 알간? 니 공부 니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공부하려는 새끼들 피해 주지만 마라. 제발, 알았냐, 이 꼴통 새끼들아?”
교단에 서서 저런 격 떨어지는 말을 아무렇잖게 뱉어대는 자가 바로 한얼고에 10년을 근무한 선생이자, 2학년 부장 배민규 되시겠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가 말한 ‘꼴통 새끼들’이 이 교실의 특정한 누군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두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알아서 잘해라. 알아서. 내가 잘하는 놈들 뭐라한 적 있냐? 난 꼴통들만 조져.”
윤수의 의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조금만 더하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건이가 윤수의 기운을 감지하고 윤수의 팔을 부여잡았다. ‘안 돼.’
그걸 놓칠 뱀눈 배민규가 아니다.
“뭐야, 채윤수. 개기냐?”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건이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렇게 되면 윤수에게는 쉽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다.
“아닌 게 아닌 게 아닌데요.”
기어이 윤수의 눈도 뒤집어졌다.
“허, 이 새끼 봐라. 한번 해 보자는 거네?”
민규는 두 팔을 아예 걷어붙이고 윤수의 자리로 성큼 걸어왔다.
“쌤 화풀이하라고 우리가 있는 거 아닙니다.”
쫙!
윤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민규가 윤수의 뺨을 올려쳤다.
“뭣이 어째? 화풀이? 신성한 교육활동을 두고 화풀이라고?”
그때, 건이가 일어났다. 뭔가 더 큰일이 날 것이라 생각한 학생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선생님.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쯤에서 노여움을 거두어 주시면 어떨까요...”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는 배우를 당황케 한다. 민규 또한 크게 당황하여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보통은 윤수가 바람을 잡고, 건이가 분위기를 타서 셋이서 신나게 칼춤을 추는 게 원래의 시나리오인데 이건 뭔가...
“하.”
민규는 그만 맥이 빠져 돌아서고 말았다. 정말인가. 그랬단 말인가. 정말 윤수놈 말대로 나는 애들을 화풀이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가. 건이놈이 저렇게 나오니까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당황한 건 윤수도 마찬가지였다. 예정에 없던 애드리브를 본 것처럼, 윤수는 건이의 행동에 어떠한 대응도 해낼 수가 없었다. 대신 맥없이 돌아서서 교실 밖으로 나가는 민규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건이가 만들었다고?
민규가 나가고 교실은 동요했다. 모두가 건이에게 몰려들었다. 화난 뱀눈을 잠재웠다는 공로와 치하가 잇따랐다.
“야, 차건.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빡친 배민을 돌려세웠어?”
“진심은 통하는 건가? 어떻게 한 거야?”
정작 일을 저지른 건이는 얼떨떨하여 윤수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정난주가 빌드업이었던 거지 뭐.”
윤수는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내뿜으며 말했다. 건이는 여전히 의아한 눈으로 윤수를 바라보았다.
“정난주 땜에 한껏 빡쳐서 기회다 싶어 반 한번 뒤집으려고 했는데 네가 김 팍 새게 한 거라고. 간만에 배민이 건수 하나 잡았는데, 나까지 미끼를 확 물었는데, 네가 안 물어서 나도, 배민도 벙쪘다고 새꺄.”
“벙찐 건 나도 매한가지야. 나도 어쩌자고 그런 말을...”
“그러고 보니 너 요새 좀 이상해. 좀... 착해진 듯?”
“뭐라냐, 병신.”
“저봐, 저거 욕 안 어울리는 거... 차건 존나 이상해...”
건이는 담배 피우는 윤수 옆에 서서 신발 뒤꿈치만 야속하게 차고 있다. 그렇다. 건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반이와의 약속 때문이다.
“윤수네랑 같이 다니는 것까지야 어쩔 수 없다지만,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순간 너랑은 끝이야.”
반이의 섬뜩한 경고가 건이의 마음속에 지박령처럼 들어앉아 있는 한, 건이가 술담배를 입에 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난주 걔한테 아직도 캐스팅 제안 오냐?”
“아직도 무한 캔슬 중이다. 죽겠다 아주 그냥.”
“아까워 죽겠나 보다.”
“그렇기도 하겠지.”
“넌 안 아깝냐? 너의 그 무술 실력을 펼쳐 보일 무대가 없다는 게.”
“무술은 무슨... 생존 싸움도 무술로 쳐주냐?”
윤수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메다꽂고는 발로 밟으며 자조적으로 내뱉었다.
“그럼 패거리 없이 너 혼자 그렇게 다닐 거야, 계속?”
“네가 있잖아.”
“...기분 좋으면서도 이상하게 오글거린다.”
“그럼 어쩌라고 새끼야.”
“나는 아무 도움도 안 되는데. 싸움도 못하고.”
“공부 안 하잖아. 꼴통 새끼야.”
윤수의 말에 건이는 그만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윤수도 함께 크게 웃었다.
“행여 내가 공부라도 하면 절교하겠네?”
“당연하지 새끼야. 말이라고.”
“아이고 무서워라. 내가 반이 따라 공부라도 하면 진짜 큰일 나겠네.”
“제발 좀 그렇게 해라 임마. 혹시 아냐? 너 보고 자극 받아서 나도 할지.”
“미친...”
“반사.”
건이는 또 한 번 큰웃음이 터졌다. 윤수와 함께 있으면 이렇게 웃을 일이 많다. 그러니 언제나 함께 다닐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