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by Charles Walker

“형, 자?”

“아니. 들어와.”

그날 밤 11시. 건이는 윤이의 방을 찾았다.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안 자고 뭐해?”

“수업 준비.”

“형도 열심이네...”

“그럼 내가 너희들 앞에 그냥 서는 줄 알았냐? 안 쪽팔리려면 열심히 해야지. 그러는 너는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음... 그게 말야.”

건이는 평소와 다르게 머뭇거렸다. 어릴 때부터 형 앞에서는 비밀이 없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부모님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한 말도 형에게는 다 했다. 그랬던 건이가 처음으로 형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윤이는 평소와 다른 건이의 모습에 의아했지만, 교육자 특유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가만히 기다렸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건이가 말문을 열었다.

“꿈을... 가져야 할까?”

“...응?”

윤이는 적잖이 당황했다. 동생이 가져온 어떤 고민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반이가 임신했다고 해도 이만큼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교사가 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지금의 자리에 오른 윤이었으므로, ‘꿈을 가져야 하느냐’라는 동생의 반문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동생은 장난치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다들 꿈 때문에 엄청 열심히 살아. 반이도 밤새도록 공부하고, 준이 형도 늦게까지 배구 연습하느라 학교에 남아 있고, 형도 이 시간까지 수업 준비하잖아. 어리다고 대충 되는 대로 살고 나이가 많다고 편하게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여태까진 정말 되는 대로 살았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나만 그러고 있어. 나 이대로 괜찮을까?”

기다리길 잘했다. 역시 한 템포 쉬고 당황한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내보이는 편이 훨씬 나았다. 윤이가 기다리니 조급증이 인 건이가 알아서 술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형은 네가 어떤 꿈이든 그걸 향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싶지만, 꼭 그런 삶의 모습만 있는 건 아니지.”

건이는 귀를 쫑긋 세우며 눈을 빛냈다.

“우리 부모님이나 내가 너한테 공부하라고 닦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건이는 고개를 저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억지로 강요한 적도 없었지?”

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한 번만 너한테 숙제를 줄게.”

숙제라는 말에 건이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마냥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어떤 건데?”

“네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그걸 고민해 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건이는 잊지 않으려고 되뇌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무나 대단한 우리 형이 내게 준 숙제니까.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뭐가 되기 위해 뭘 해라도 아니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도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반이야. 좀 쉬어가면서 해.”

수진은 조심스레 반이의 방에 들어서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갈하게 깎은 사과 접시를 책상 한켠에 올려놓으니 반이가 냉큼 하나를 집어먹는다.

“맛있네. 고마워, 엄마.”

“그렇게 열심히 해서 서울대 가려고?”

“...가면 좋지.”

수진은 내심 기대감이 일었지만, 행여 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얼른 숨겼다.

“근데 엄마. 매번 1등은 박진희야.”

“응? 진희라면...”

“그래. 내 베프. 진희는 못 이겨. 서울대는 진희가 갈 거야.”

수진은 속상했다. 그렇게 말하는 반이의 말에 악의가 전혀 없어서, 그걸 알면서도 묵묵히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서, 저렇게 말해도 제 속은 오죽 답답할까 싶어서.

“진희도 가고 너도 가면 되지 뭐. 문 닫고 가도 가면 가는 거야. 까짓거.”

수진은 위로가 될지 안 될지 모를 말을 지껄이고는 반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엄마는 반이 서울대 안 가도 돼. 진짜야. 그러니까 건강 해치지 말고 잠 좀 자고 커피 좀 줄여, 기집애야.”

“헤헤. 알았어. 걱정하지 마.”

수진은 눈물이 글썽이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다. 얘는 누굴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게 됐나. 행여 남편 없이 홀로 남은 나를 불쌍히 여기는 건 아닐까. 나는 반이가 있어서 진짜 괜찮은데. 반이 덕분에 남편 없이도 그 배로 행복한데.

“참. 건이는 잘 있지?”

“걔 걱정은 하지도 마.”

건이 얘기를 하니 딸이 해실해실 웃으며 손사래를 친다. 그렇게 좋을까. 수진은 내심 질투 같은 게 고개를 드는 걸 느낀다. 내겐 아들 같은 딸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 딸 아프게 하면 가만히 안 있는다. 차건. 조심해라.


“...이상하네. 왜 이렇게 공기가 추운 것 같지?”

잠결에 오뉴월 서리 비슷한 걸 느끼는 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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