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개과천선(改過遷善)

by Charles Walker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후, 학교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난주가 반이를 감금, 폭행한 사건은 반이가 알리기를 원치 않아 조용히 묻혔다. 또한 윤수는 그 길로 난주를 찾아가 너를 돕겠노라고, 반이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자신의 힘과 전략으로 원하는 걸 얻어낸 난주는 기고만장하여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대신 건이의 가슴 속은 남모를 한(恨)으로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반이에게 일어난 일을 어디 가서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힘으로 복수조차 할 수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건이는 엎드려 있다가 별안간 치솟아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책상을 꽝 치며 일어났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 민규의 수업 시간이었던 것.

“조용하다 싶더니 역시나로구만. 복도로 나와, 차꼴통.”

건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뒷문을 열고 복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어이, 차건. 뭐에 또 그렇게 긁히셨나?”

“...죄송합니다.”

“에이, 그런 말 말고. 언제는 뭐 그렇게 예의 갖추셨다고.”

“......”

“튀지 마라. 거슬리지 좀 마. 내가 네놈들 땜에 아주 그냥 죽겠다. 언제 사람 될래?”

건이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

민규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아침에 못 한 거, 지금 마저 하자. 새끼. 좀 이상하다 했더니만 역시네. 어디 선생 앞에서 한숨을 쉬어!”

쫙!

건이의 뺨이 보기 좋게 올려붙여졌다. 하루이틀 맞아본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워 눈물이 맺혔다. 그러다 건이는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흑... 흐흑...”

흐름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싶었는지 민규는 한 대 더 올려붙이려다 멈칫했다.

“뭐, 뭐야. 왜 울어.”

민규가 당황해 묻자 건이는 더욱 서럽게,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흐억... 으억... 어억...”

“야, 야 임마. 건아. 차건! 그만 울어, 임마.”

“배 부장?”

민규는 소리가 난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리곤 짧은 탄식과 함께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교장이었다.



“교장 선생님. 한 번만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아뇨. 이번 한 번으로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 부장의 지도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내가 그동안 묵과한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학생들이 교육적 지도를 따라오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정도가 점점 지나치네요.”

교장은 단호했다. 그 길로 건이와 민규는 교장실로 끌려왔고, 건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민규는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는 중이다.

“배 부장도 눈이 있다면 아이 뺨에 손자국 선명한 것 봐요. 저 지경으로 애를 때리는 게 교육입니까? 교사가 쓸 수 있는 교육적 방법이란 게, 정녕 폭력밖에는 없는 거요?”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교장 앞에서 민규는 한없이 작아졌다. 교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여태껏 민규는 쉽고 간편한 방법으로 간신히 버텨왔는지 모른다. 폭력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날림 포장하며. 애써 합리화하며. 교장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애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는 윤수의 말이 맞는지도.

“이사회에 이 사안, 보고할 겁니다. 감봉, 근신 등! 어떤 처분이 내려오든, 감수하세요.”

민규는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건이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다. 건이는 자신도 모르게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저희 담임 선생님이 피해 보시게 하는 건 싫어요. 그만 멈춰 주세요.”

교장과 민규는 동시에 건이를 바라보았다. 교장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니?”

“담임 선생님께서 좋지 않은 일로 이사회에 보고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저희 학생들이 받게 돼요. 좋든 싫든 저희 담임이세요. 이번 일 때문에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시기라도 하면 그만큼 저희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민규의 눈은 휘둥그레져서 이제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교장은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민규를 보며 말했다.

“착한 제자에 그렇지 못한 스승이라.”

민규는 고개를 떨구었다.

“학생 성의를 봐서 이번엔 그냥 넘어갑니다. 배 부장. 하지만 두 번 다신 폭력은 안 돼요. 절대로!”

“알겠습니다,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민규는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장에게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어느덧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나고, 건이네 반 아이들도 모두 하교한 뒤였다.

“이것들이 담임이 없는데도 모조리 다 튀었어?”

민규가 짐짓 큰소리를 내 보지만 예전 같은 포스는 싹 사라진 뒤였다. 옆에 서 있던 건이는 푸훗 하고 웃어버렸다.

“이 자식은 또 왜 웃어. 야. 너 내가 만만해?”

“아닙니다. 큭.”

“하... 나 이거 모양 빠지게... 뭐... 일단 고맙다.”

“일단 고마운 건 뭐예요? 고마운 건 그냥 고마운 거지.”

“그래, 그냥 고맙다. 임마.”

건이는 그제야 슬며시 미소 지어 보였다.

“근데 넌,”

민규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물었다.

“왜 날 도와 주냐? 너 나 싫어하잖아.”

“...싫어하죠. 겁나 많이.”

“아, 그러니까. 왜 날 돕냐고. 결정적인 순간에. 엿 되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반이가 그랬어요. 폭력을 폭력으로 갚으면 파멸밖에 남지 않는다고.”

민규는 어느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건이를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아는 그 꼴통이 맞는데. 이상하게도 반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 환각인가.

“파멸하면 안 좋잖아요. 좋든 싫든. 그냥 같이 살아요.”

민규는 건이의 마지막 그 말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오후 7시 30분. 한얼고 배구부실.

“오늘은 치킨이닭!”

건이가 기세 좋게 외치며 닭 네 마리를 배구부실 바닥에 깔았다. 일전에 모였던 멤버 그대로여서 다들 위화감 없이 호화로운 저녁상을 받아들였다. 준이가 말했다.

“아니, 무슨 바람이 들어 이 커플이 이렇게나 돈을 많이 태웠대?”

“헤헤, 오늘 여러모로 좀 파란만장한 하루를 보냈는지라.”

“왜, 무슨 일 있어?”

준이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건‧반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별일은 아녜요, 선배. 다 지나갔으니까. 같이 기념한다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어요!”

“그, 그래. 먹자! 시험 끝나면 선배가 한턱 거하게 쏠게!”

다들 왁자하게 웃으며 신나는 저녁 시간을 보냈다.



“허, 배가 안 꺼지네.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준이 머쓱하게 웃으며 배구부실 뒤편 공터로 나왔다. 그곳에는 반이가 남은 커피를 홀짝이며 벤치에 앉아 있었다.

“선배. 괜찮아요?”

“뭐가. 배부른 거?”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척하면 척준이 왜 그래요.”

“응? 아, 그거.”

준은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하려 애썼지만 이상하게도 반이 앞에서는 마음의 동요를 숨기기가 어려웠다.

“그러게. 괜찮지가 않네. 갑작스럽기도 하고.”

“선배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그게 딱 맞아떨어지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이러지도 못하겠고, 저러지도 못하겠고.”

준이에게 찾아온 상황은 이러했다. 국립 체육대학 입시 준비중이었던 준이가 어느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우연히 경기를 참관한 어느 구단주가 준이를 자신의 구단에 영입하고자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영입 조건은 대학입시를 포기하고 오로지 구단에서 배워서 경기에만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대학생이 되느냐, 선수가 되느냐의 기로에 선 것이다.

“선수가 빨리 되는 것도 좋겠지만, 아직 더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커. 하지만 배우기만 너무 오래 하다가 선수가 될 타이밍을 놓쳐버리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마음이 너무 복잡해.”

“선배는 배구를 왜 해요?”

“응?”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조금 단순해져 보는 게 어때요? 선배가 배구를 왜 하게 됐는지부터 생각해 봐요. 선배의 역사를. 그 시작을.”

반이는 그렇게 말하고 남은 커피를 다 마셨다. 그리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우린 이제 갈게요, 선배. 연습 열심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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