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지 뭐
김진표의 모든 음악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2003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 앨범인 [JP4]는 대중성과 음악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명작임을 인정한다. 김진표의 음악을 두고 힙합이다, 아니다 왈가왈부하는 의견 또한 적지 않다. 전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1세대 힙합의 선두주자 중 한 명으로 김진표를 꼽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후자 쪽 의견은 랩이라는 수단으로 표현된 대중음악이라고 명백히 선을 긋는다. DJ DOC가 5집 [The Life... DOC Blues]를 발표했던 2000년 이전까지 힙합 그룹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현상과 교묘하게 오버랩된다.
하지만 김진표의 경우는 DJ DOC와는 그 근거가 조금 다르다. 김진표를 힙합 뮤지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바로 김진표의 랩 실력이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내뱉으면서도 훌륭한 딕션을 유지하고, 중후하고 유니크한 저음으로 매력적인 음색까지 드러냈지만 딱 그것뿐이라는 거다. 랩이란 딕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플로우(flow)'이다. 플로우를 있는 그대로 번역하면 '흐름'인데, 노래에서 멜로디와 같은 요소라고 보면 된다. 얼마나 다양한 플로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느냐 또한 래퍼를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인 만큼, 김진표는 플로우의 다양성 측면에서 최하위 래퍼이다. 다양한 플로우를 구사하는 대표적인 래퍼로 버벌 진트(Verbal Jint)가 있으니 비교해서 들어보면 좋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 [JP4]는 만듦새가 좋은 앨범이다. 혼자 이끌고 간 타이틀곡 '악으로'를 필두로, BMK와 함께 불러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아직 못다한 이야기' 같은 히트곡이 수록되어 있다. 명실상부 김진표라는 뮤지션의 커리어 하이(Career high)이다.
가장 놀랐던 점은 인트로 격의 '프롤로그'에서, 거친 날숨을 이용하여 임팩트 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패닉 2집의 인트로인 '냄새'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었는데, 그때의 경험이 모티프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주는 제대로 된 언플러그드 사운드인데, 김진표가 힙합 뮤지션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게 무색할 정도로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다.
사실 뮤지션이 장르적 정체성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단순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기다 아니다를 떠나서 그냥 잘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닐까. 혼자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인식했다면, 다른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앨범을 잘 만들면 된다. 김진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명확히 인식했고, 자기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다른 뮤지션들의 도움으로 채워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히트작 [JP4]이다.
'악으로'와 '아직 못다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박정현과 함께한 달콤한 팝 트랙인 '시간이 필요해', 윤미래와 랩으로 호흡을 맞춘 '뻥끼구락부', 애즈원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아련하게 다가오는 '스물다섯', 재기발랄함을 함뿍 담은 '오롤롤롤로' 등 전체적으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좋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