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극복하고 노래 곁으로 돌아온 남자
가수 김현성이 처음 등장한 해는 1997년이었다. 김현성의 데뷔에는 약간의 비하인드가 있는데, 김형석 작곡의 '너를 위해서'라는 R&B 곡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데뷔를 준비하고 있던 김현성은 어느 날 조규만의 작업실에서 피아노 반주 위에 아름다운 멜로디가 얹힌 어느 데모 음원을 하나 듣게 된다. 이 곡이 무엇이냐고 묻자 조규만은 '소원'이라는 제목의 발라드 곡이라고 하였고 김현성은 단숨에 이 곡을 내가 부르겠다고 한다. 정식으로 녹음을 해 보니 '너를 위해서'보다 훨씬 퀄리티가 높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원'으로 타이틀곡이 바뀌어서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된다.
'소원'의 전주는 지금 들어도 여전히 가슴 한쪽이 아려오는 듯하다. 어린 왕자처럼 여리여리했던 당시 김현성의 모습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왜 싫어졌는지 가르쳐 줄 순 없나요'라며 애절하게 노래하는,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툭 부러질 것 같은 소년 같은 그 모습. 하지만 그 가냘픈 이미지 때문에 '소원'이 약한 곡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해이다. 실제로 한 번 불러보면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는 곡임을 알 수 있다.
'소원'에는 저음이 없다. 이 곡은 첫 벌스(verse)부터 중음역대의 여린 소리로 시작하는데, 애초에 중음역대를 여린 소리로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후렴으로 가기 전에 힘을 살짝 빼주는 부분을 지나 마침대 후렴으로 도약하면 성대가 터질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소원'의 후렴은 남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2옥타브 후반 대의 음이 계속해서 휘몰아친다. 이렇게 어려운 곡을 부르면서 여린 느낌으로 이미지메이킹을 하였으니, 김현성, 무서운 남자다.
이듬해 발표한 2집은 방시혁 작곡의 마이너 발라드 '슬픈 변명'을 타이틀로 활동하였으나 1집만큼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앨범에는 숨은 명곡이 많다. 훗날 베이비복스(Baby V.O.X.)가 리메이크하여 큰 사랑을 받게 되는 댄스곡 'Killer', 친한 선배인 김경호의 창법에 영향을 받아 녹음한 록 발라드 '유죄', 감미로운 세레나데 '나의 신부에게' 등을 추천할 만하다.
이로부터 약 2년 동안 절치부심하여 내놓은 3집 앨범 [Solitude]는 '소원'에서 찰떡 호흡을 자랑했던 조규만이 '이해할께'라는 곡을 타이틀로 내세웠다. 이 곡 또한 김현성 특유의 하이톤을 제대로 살린 명곡으로, 2집 때와는 달리 소소하게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진짜 대박을 터뜨린 건 2002년에 발표한 정규 4집 [Soulmate]의 타이틀곡이자 김현성을 대표하는 곡, 'Heaven'이었다.
'Heaven'은 김현성이라는 보컬리스트가 낼 수 있는 역량을 최대치로 집대성하여 한 곡에 부려놓은 곡이다. 2옥타브 후반과 3옥타브를 계속해서 넘나드는 폭풍 같은 저 후렴구를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Heaven'은 김현성에게 애증의 곡이기도 하다.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게 해 준 곡이지만, 그와 동시에 이 곡을 라이브로 지나치게 많이 부른 탓에 그만 성대결절을 겪고 오랫동안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수가 목소리를 잃는다는 건 얼마나 큰 시련인가.
김경호가 그랬듯, 김현성도 같은 전철을 밟았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하고 혹사당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시장경제 논리에 의해 성대결절을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채 5집 앨범을 녹음, 발표해야 했다. 가수의 기량이 떨어지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심지어 성대결절이 완전히 나았을 때에도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음정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등, 거의 '발성 장애'와 같은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성대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노래가 안 된다는 건 물리적 요인이 아닌 100% 심리적 요인이다. 김현성은 그렇게 아픈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초에 발표된 싱글 '다시 사랑하려 해'를 들어보자. 이 곡은 단순한 디지털 싱글이 아니다. 이 곡은 가수 김현성의 완벽한 극복 서사이고,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젖힐 2막 1장의 첫 페이지이다. 김현성이 전성기 때 가장 잘 냈던 2옥타브 후반~3옥타브 초반대의 음역으로 후렴을 구성했는데, 예전만큼 잘 소화하는데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뭔가 연륜이나 경험 같은 것들이 쌓여 더욱 농익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노랫말은 김이나 작사가가 썼다. 단순한 사랑 노래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이 곡은 가수 김현성이 다시 노래를, 음악을 사랑하려 한다는 내용으로 읽는 것이 좀 더 적절할 듯하다. 말하자면 오랫동안 음악과 멀어져 있었던 누군가가 음악에게 다시 돌아오면서 부치는 절절한 연서(戀書)이다. 이 싱글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목소리 하나를 되찾았으니, 이제 그 목소리의 소중함을 알고 아끼는 마음으로 가수 김현성으로서 앞으로의 활동을 응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