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를 태워 노래에 혼을 담은 가객(歌客)
왼쪽부터 [김현식 2013년 10월] (2013), 정규 1집 [봄여름가을겨울] (1980), 2집 [사랑했어요] (1984), 3집 [비처럼 음악처럼] (1986), 4집 [김현식 VOL.4] (1988), 5집 [KIM HYUN SIK] (1990), 6집 [KIM HYUN SIK VOL.6] (1991), 7집 [Self Portrait] (1996)이다.
대한민국 국민치고 김현식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젊은 세대들에게는 의외로 생소한 이름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젊은이들과 어떤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이들이 김현식을 모르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물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그렇게 되어버리는 건가. 벌써 다 잊히는 건가. 그러기엔 그가 사는 내내 바친 노래에 대한 열정이 너무 아까운데. 안타까운데.
젊은이들에게 '김현식' 이름 석 자가 잊히는 것도 사실 무리는 아니다. 1990년 11월 1일에 세상을 떠났으니 벌써 35년 전 일이 되었다. 그는 1958년생으로, 무려 마흔도 안 된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기에, 그는 그렇게 빨리 죽음의 길로 발걸음을 재촉한 걸까.
신촌의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던 김현식을 발견하여 음악 씬으로 이끌었던 인물은 당대 최고의 DJ였던 故 전유성이었다. 전유성은 스타를 알아보는 안목이 남달랐으며, 김현식을 본 순간 한눈에 그가 대형가수로 성장할 것임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전유성을 통해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그건 너'로 대히트를 기록한 이장희 등과 친분을 맺었고, 이장희의 프로듀싱을 통해 정규 1집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을 발표한다.
하지만 야심차게 발표한 1집은 대중적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에 좌절한 그는 음악 활동을 잠시 쉬고, 이 즈음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김현식 부부는 피자 가게를 열어서 김현식이 직접 배달도 하는 등 건실하게 살았다고 하며 김현식의 회고에 따르면 인생에서 이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고 한다. 역사에 만약이란 아무 의미 없는 것이지만, 만약 이때 김현식이 안정적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자족적인 삶을 이어갔다면 좀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러기엔 김현식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너무 컸다. 1집 발표 후 4년이 지난 1984년, 김현식은 동아기획 김영 사장과 함께 앨범을 만들기로 하고 직접 작곡한 '사랑했어요'를 타이틀곡으로 한 2집 앨범을 발표하는데 이 앨범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그렇게 김현식은 운명처럼 뮤지션의 길을 걷게 된다.
이쯤에서, 1집은 왜 실패하고 2집은 왜 성공했을까를 짚고 싶다. 내 기준에서는 1집도 너무나 훌륭한 앨범인데 말이다. 특히 김현식 하면 흔히 허스키한 탁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1집에서는 허스키는커녕 맑은 공명감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젊고 건강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만큼 김현식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앨범이 바로 1집인데 왜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을까.
조금 더 냉정하게 1집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후반부의 '그대와 나'라든지, '나는 바람' 같은 곡을 들어보면 과연 같은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음색이 다르다. 사실 이렇게 된 배경이 있다. 사실 이 1집은 조금 더 일찍 세상에 나왔어야 했는데, 프로듀서인 이장희가 대마초 파동에 휘말리는 바람에 발매가 늦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예전에 작업한 곡들과 비교적 근자에 녹음한 곡들이 한데 섞이고 말았다.
가수는 세월이 흐를수록 내공이 쌓이게 마련이다. 김현식의 경우는 지독한 연습벌레인 데다 소리에 대한 탐구정신도 워낙 강해서 1집이라는 한 앨범 안에서도 이 가수가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대의 대중들에게는 위화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뭐야? 같은 사람 맞아?'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2집의 성공에 김현식은 안주하지 않았다. 김현식은 김영 사장에게 '다음 3집 앨범은 밴드로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김영 사장은 그렇다면 멤버를 모아 오라고 했다. 그렇게 모인 초창기 멤버들이 바로 김종진(기타), 故 전태관(드럼), 故 유재하(키보드), 장기호(베이스)였다. 김현식은 이들을 그저 자신을 받쳐주는 백 밴드로 대우하지 않았고, 함께 앨범을 만드는 '동료'로 대했으며, 그 증거가 앨범에 수록하기 위한 곡들을 만들어오게끔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웃지 못할 일화가 하나 있다.
현재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인 김종진이 술회하기를, 자신은 '쓸쓸한 오후'라는 한 곡을 (생애 처음으로) 써서 김현식에게 선사했는데 당시 '천재'로 손꼽히는 유재하는 자신이 그 동안 써 놓았던 (무려) 열 곡을 고스란히 김현식에게 '바쳤다'. 하지만 김현식은 공평하게 한 곡씩 수록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유재하의 곡 중에 '가리워진 길'만 선택해서 녹음했고, 이에 마음이 상한 유재하는 밴드를 탈퇴하고 만다.
유재하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키보드에 박성식이 새로 합류하게 되고, 이 박성식이 선사한 곡이 바로 김현식의 불멸의 히트곡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유재하와의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던지, 3집 앨범이 나오고 유재하에게 앨범을 선물하며 '배신자'라며 장난스럽게 쓴 문구가 있다.
밴드로 발표한 3집은 2집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며 김현식을 언더그라운드의 스타로 만들었으며, '메이저엔 조용필, 인디엔 김현식'이라는 공식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음악 씬에서의 성공이 실제 삶에서의 성공과는 그 궤를 달리 했던지, 김현식은 이 즈음 아내와 이혼하는 등 짙은 외로움의 그늘 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이 즈음 대마초에 손을 대게 되고,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한다.
대마초 사건을 겪고 난 1988년, '언제나 그대 내 곁에'를 타이틀곡으로 한 4집 앨범을 발표하고 개최한 복귀 콘서트에서 자신을 환영하는 수많은 팬들의 함성 앞에 그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다시는 대마초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삭발까지 감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마초에 대한 유혹을 이기기 위해 이번에는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이것이 결국 김현식을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1989년에는 신촌블루스와 함께한 '골목길',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부른 '비 오는 날의 수채화' 등으로 성공 신화를 계속 이어가지만 김현식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폭음은 간경화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고, 그는 입원과 퇴원(가끔 도주)을 반복하며 5집 앨범을 준비했다.
1990년에 '넋두리'를 타이틀곡으로 나온 5집 앨범은 허스키하다 못해 완전히 쇠진해 버린 김현식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담았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처절한지, 김영 사장은 '넋두리'를 듣자마자 '현식이가 죽겠구나' 생각이 들어 그만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나 김현식이 과연 세상을 떠났으니, 김영 사장의 촉도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5집 앨범을 발표하고 나서도 김현식은 멈추지 않았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 6집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며 김영 사장을 재촉했다. 6집 앨범은 밴드 '사랑과 평화'의 멤버 최이철을 프로듀서로 하여 제작되었으나 11월에 가수가 사망하는 바람에 완성되지 못할 뻔했다. 6집 작업을 위해 새롭게 녹음한 곡은 2번 트랙 '나의 하루는'과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부른 5번 트랙 '사랑했어요'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5집 앨범 미수록곡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중 6집의 타이틀곡으로 점찍어진 한 곡이 1991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히트곡이 된다. 바로 '내 사랑 내 곁에'이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당시 크리스마스 캐롤보다도 더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하며 골든디스크 본상까지 수상하게 되는 기염을 토했으나, 가수가 세상을 떠나 어린 아들이 대리 수상하는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김현식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 보았다. 글이 너무 길어졌는데, 과연 사랑하는 만큼 할 말이 많아지는 건가 싶다. 김현식이 조금 더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벌써부터 그가 잊히는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당혹스럽고 슬프기까지 하다. 그의 가슴 속에 타오르는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의 육체를 활활 태워 노래에 영혼을 담게 했다. 그가 세상에서 겪은 외로움은 고스란히 노랫말이 되어 시처럼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가 닿았다. 짧은 생애 속에서 김현식은 음악이 줄 수 있는 감동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 뒤, 세상에 잠깐 머무르는 손님처럼 홀연히 떠났다.
마침 이 글이 올라오는 시기도 그가 떠난 11월이다. 가을과 겨울 사이와 같은 찰나를, 너무나 최선을 다해 살았던 김현식을 생각하며 오늘은 그의 대표곡을 하나씩 꺼내 들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