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싱어송라이터
왼쪽부터 [Christmas With Babyface] (1998), [A Collection Of His Greateast Hits] (2000), [The Day] (1996), [Face 2 Face] (2001), [For The Cool In You] (1993), [Girls Night Out] (2022), [Grown & Sexy] (2005), [MTV Unplugged NYC 1997 Live] (1997), [Playlist] (2007), [Return Of The Tender Lover] (2015), [Tender Lover] (1989)이다.
R&B 음악의 역사상 가장 찬란한 광휘로 반짝였던 시기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였을 것이다. 그 시기에 히트곡을 많이 발표했던 대표적인 프로듀서로 테디 라일리(Teddy Riley), 알 켈리(R. Kelly), 그리고 이 베이비페이스를 꼽는다.
한국 대중들에게 베이비페이스의 음악이 다른 류의 R&B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솔리드 덕분일 것이다. 솔리드가 활동했던 내내 선보였던 음악이 로맨틱한 무드의 감미로운 R&B로 베이비페이스라는 카테고리에서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당시 한국 대중들에게 'R&B=솔리드'였기 때문에 베이비페이스의 음악에도 이질감이 없을 수밖에.
하지만 우리에게 베이비페이스의 이미지는 가수라기보다는 작곡가, 프로듀서에 가깝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흠, 그 양반 곡은 잘 쓰는데 노래는 별로...'라고나 할까.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을 필두로 하여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무엇보다도 토니 브랙스톤(Toni Braxton)이나 브랜디(Brandy) 등에게 곡을 선사하여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었던 작곡가에게 가수로서의 역량은 별로라는 꼬리표가 붙는 상황. 과연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베이비페이스는 곡을 잘 쓰는 만큼, 그 곡의 느낌을 노래로도 잘 표현하는 걸출한 싱어이기도 하다. 물론 음역대가 대단히 넓다거나 성량이 무지막지하게 큰 보컬은 아니지만, 가수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가장 일등 덕목을 갖추었다. 바로 '음색'이다. 특유의 음색이 지문처럼 뚜렷하여, 아예 그 음색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 번이라도 그 목소리를 들어 보았다면 누가 들어도 베이비페이스가 불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럼 반은 먹고 들어가는 거 아닌가?
베이비페이스 보컬의 오리지널리티는 음색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한 가지, 그는 기가 막힌 '밀당의 고수'이다. 노래는 리듬감이 살아나야 맛있게 들리는 법. 너무 밀어서도 안 되고 너무 당겨도 재미가 없다. 베이비페이스는 그 완급 조절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치 음절 하나하나에 리듬의 숨결을 불어넣은 듯한 느낌이랄까.
그 밖에도, 프로듀서답게 품어안을 수 있는 장르마저도 광활하다. R&B 프로듀서로 90년대에 제대로 진가를 발휘했지만 그 틀에 갇히지 않고 1998년에 발표한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 With Babyface]에서는 재즈를, 2001년에 발표한 [Face 2 Face]에서는 힙합과 네오 소울을, 2007년에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Playlist]에서는 포크와 컨트리를 시도하며 뮤지션으로서의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정규 앨범인 [Girls Night Out]에서는 씬에서 가장 핫한 여성 R&B, 힙합 뮤지션들과 콜라보를 이뤄내는 등 여전히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놓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그래도 '가수' 베이비페이스로서 낸 정규 앨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1989년작 [Tender Lover]와 그 후속작 격인 2015년작 [Return Of The Tender Lover]이다.
[Tender Lover]는 그야말로 베이비페이스라는 뮤지션의 정체성이 드러난 앨범으로, 앨범의 전반부에는 그루브한 뉴 잭 스윙 트랙들을, 후반부에는 감미로운 R&B 발라드 트랙들을 배치하며 동전의 양면 같은 그의 매력을 십분 나타내는 데에 성공했다. 'It's No Crime', 'Tender Lover', 'Let's Be Romantic'으로 이어지는 트로이카는 내적 댄스를 유발할 수밖에 없고, 대표곡인 'Whip Appeal'이나 'Soon As I Get Home'을 지나 'Where Will You Go'로 마무리하는 후반부는 R&B 발라드의 정수를 담아내어 아름답고 황홀하다. 이 앨범이 흥행에도 성공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가수 베이비페이스로서의 성공작인 [Tender Lover]의 기조는 무려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15년에서야 [Return Of The Tender Lover]로 겨우 이어졌다. 그 이전까지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던 베이비페이스가 원래 자신이 가장 잘하던 R&B로 되돌아오면서 'Tender Lover의 귀환'을 천명한 것이다. [Tender Lover]의 후속작답게 댄서블한 트랙과 감미로운 발라드가 균형감 있게 수록되어 있는데다, 현대적 감각까지 놓치지 않는 점이 놀랍다. 특히 앨범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는 'We've Got Love'는 단연 압권이다.
놀랍게도 베이비페이스는 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6세가 되었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셈이다. 그가 최근까지 발표한 음악들을 듣노라면 이걸 두고 누가 환갑이 넘은 사람이 만든 음악이냐고 할 것이다.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육체는 다소 늙었다고 할지 모르나, 그의 음악은 여전히 젊고 파릇파릇하다. 벌써부터 그가 발표할 다음 앨범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