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폐지를 꿈꾸며
고교학점제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는 언론 보도가 어제 발표되었다. 답답한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밀려왔다. 정권이 바뀌어도,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건 똑같구나 싶었다. 다른 분야의 일은 똑부러지게 잘하면서 왜 유독 교육 분야의 일은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전무한가 싶다. 어쩌면 이미 손쓸 수 없을 만큼 내상이 깊어 누구도 제대로 된 솔루션을 줄 수 없게 된 것은 아닐까? 지금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문제는 학교에 목돈을 쥐어준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로 인해 학교 전체에 드리워진 불안의 그림자를 이해해야 한다. 교과목 수 급증이 교원 수급 문제를 야기했고, 수업의 질을 하락시켰으며 학생은 수업을 들어야 할 당위를 잃었다. 이동 수업은 공동체 의식을 무너뜨렸고 개인화, 파편화를 조장했다. 교사는 이 모든 문제를 자신의 무능함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면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책이라 할 만한 대안을 제시한 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대안이라는 것도 '마주앉아 서로 대화하기', '성찰적 공동체 만들기'와 같이 추상적이고 현 실정에 맞지 않는 뜬구름 잡는 소리들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였으면 진작에 해결되고도 남았다.
교육정책 입안자들은 제발, 형식적이고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본질을 가리려고 하지 말아 달라. 현재 교육의 문제점은 크게는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상이 불분명하다-혹은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것이고, 작게는 나선형 구조로 긴밀하게 연계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학년 혹은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점진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이전 학년에 배웠던 내용에서 조금씩만 심화되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중학교의 자유학기제, 고등학교의 고교학점제는 그것을 막는 대표적인 제도이다. 시스템이 교육 결손을 조장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교육정책 입안자 여러분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딱 두 가지이다. 자유학기제와 고교학점제를 전면 폐지하고 현 수능 체제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자유학기제와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제대로 살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현장을 개선하고 대입 선발 방식을 학생부 서류 및 면접 전형으로 전환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 수능은 폐지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교육을 이 사회가 변하는 속도에 맞게 좀 더 실질적이고 효용 가치가 높은 비전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은 정녕 없는 건가? 정말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진로 탐색 및 선택을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강요한다. 하지만 미래의 노동 시장은 한 개인이 하나의 직장만을 영위하며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 사회는 현재 어긋나도 한참 어긋난 톱니바퀴이며, 듣기 끔찍한 불협화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