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 잰 듯 정확한 발성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
왼쪽부터 싱글 [Time LEAF] (2020), 정규 2집 [뒷모습(後)] (2007), 정규 1집 [중독] (2004), 1.5집 [기대(期待)] (2005), 정규 3집 [The 3RD ALBUM - Thank You] (2018)이다.
나윤권에 대한 세간의 평가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코멘트는 '성시경과 김범수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가장 정확하게 본 시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성시경의 감미로운 느낌과 김범수의 정확한 발성을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나윤권처럼 되리라. 하지만 왜일까. 나윤권은 앞서 밝힌 성시경이나 김범수만큼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가수는 아니다. 나윤권의 음악은 왜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발성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나윤권의 음악을 꼭 들어야 한다. 소리의 길, 호흡의 밀도, 성량의 크기 조절까지 그는 완벽하게 표준화되어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서는 나윤권을 참고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 이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정확한 발성에서 멈추면 나윤권이 걷는 길을 가게 된다(쓰면서 왜 이렇게 슬프지...).
나윤권 보컬에게는 양날의 검이 있다. 바로 '담백하다'라는 것이다. 그가 데뷔했던 2004년은 무려 'SG워너비'가 등장하고, '박효신'이 한창 소를 몰아제끼며 여기저기 통곡 소리가 가득했던 가요계였다. 그런 울음소리 속에서 울지 않고 말하듯이 '노래하는' 거의 유일한 보컬이 나윤권이었다. 처음에는 대세와 달랐기 때문에 주목받기도 했다. 1집의 타이틀곡 '약한 남자'는 반응이 미지근했지만, 홍보조차 하지 않았던 '나였으면'이라는 발라드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나였으면'에도 본인이 밝힌 녹음 비화가 있는데, 그날 연습이 모두 끝나고 기분 좋게 지인들과 술 한잔을 하고 있는데 김형석 작곡가에게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슨, OST로 너무 좋은 곡이 있는데 빨리 녹음해서 넘겨야 하니 지금 당장 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술에 약간 취한 상태로 녹음실에 도착하여 부랴부랴 녹음했는데, 중간에 음이탈 실수를 하였으나 수정할 시간도 없었고 심지어 그 느낌이 더 좋았기 때문에(!) 그대로 발매되었다고 한다. 문제의 부분은 '수없이 많은 날을 나 '기'도해 왔죠'의 '기'이다. 유심히 듣지 않으면 아마 음이탈인지도 모를 것이다. 나윤권처럼 완성형 보컬은 음이탈이 나도 고작 저 정도다(연구와 연습의 위대함이여...).
'나였으면'의 성공은 이듬해 발표한 싱글 앨범인 1.5집 '기대'에서 증폭되었다. 이 시기가 아마 나윤권의 화양연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는 후반부에 'I'll always be with you~oh~'를 한 호흡으로 길게 뽑으며 고난도의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모습에서 그 가창력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한 음 한 음 정확하게 짚어나가는 애드리브가 마치 김범수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기대'는 많은 보컬 지망생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오디션 및 입시곡으로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다.
2007년에 발표한 정규 2집 [뒷모습(後)] 또한 숨은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윤종신이 작곡한 타이틀곡 '뒷모습'은 평소의 나윤권답지 않게 감정을 듬뿍 담아 아련하게 불렀고, 데뷔 때부터 계속해서 인연을 맺어 온 김형석이 작곡한 1번 트랙 '바람이 하는 말' 또한 훌륭하다. 윤종신과의 호흡도 나쁘지 않았지만, 역시 나윤권은 김형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콤비인 듯하다. 그 밖에도 미디움 템포의 '행운', 감미로운 발라드 '아무 것도 아닌 것도', 특유의 담백한 감성이 돋보이는 '지워..미워..잊어'까지 명곡이 많이 수록된 앨범이다.
내가 나윤권의 음악을 즐겨 들었던 시기는 딱 여기까지이다. 그 이후의 앨범들은 솔직히 많이 듣지 못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밍숭맹숭한 느낌. 음식으로 말하자면 평양냉면 같은 느낌이랄까. 슴슴한 맛이 당길 때는 가끔 먹으면 좋지만 늘상 달고 살지는 못할 것 같은 음악이다. 나윤권은 마치 '애절함'을 금기시하는 보컬리스트 같다. 모든 감정을 담백하게 표현하다 보니 '저 사람은 그다지 슬프지 않은가?' 혹은 '가사는 슬픈데 너무 안 우는 거 아냐? 거짓말 같은데?'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내가 그의 감정 표현을 두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절대, 결단코 아니다. 노래하는 사람이 그러기는 불가능하다. 레코딩 음원만 듣고 그의 감정 표현에 대한 진실성이 의심된다면 라이브 무대를 찾아보라. 나윤권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보컬로 바이브의 윤민수를 꼽을 수 있겠는데, 온몸을 던져 노래하는 윤민수와는 달리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서서 담담하게 노래하지만 손짓, 표정 등을 적재적소에 사용해 나름대로 감정 표현을 하고 있다. 그게 어떻게 거짓일 수 있겠는가?
나윤권의 후기 음악 중에서는 2020년에 싱글로 발표된 '나뭇잎' 정도를 추천한다. 나윤권의 대중적 파급력이 크지 않다고 해서 그의 존재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처럼 정확한 발성을 구사하는 보컬리스트는 흔치 않다. 그의 소리만 연구해도 소리의 기본기를 잡는 데에는 아무런 손색이 없을 것이다. 좋은 교보재를 가까이 두고 멀리 돌아가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