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원한 피아노 맨
왼쪽부터 앨범 [Piano Man] (1973), [The Stranger] (1977), [Turnstiles] (1976), [52nd Street] (1978)이다.
빌리 조엘의 별명은 '피아노 맨'이다. 1973년에 발표한 그의 곡 제목이기도 하고, 라이브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익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피아노 맨으로서의 빌리 조엘보다 그 목소리에 먼저 반한 케이스이다. 내가 처음 들은 그의 곡은 [Turnstiles]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New York State Of Mind'였는데, 그 곡 특유의 쓸쓸한 분위기와 아련한 목소리에 마치 (한 번도 가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의 가을 어느 황량한 거리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도순으로 하면 [Piano Man] 앨범 얘기를 먼저 해야겠지만, 이 앨범에 대해서는 동명의 곡 'Piano Man' 말고는 그다지 할 말이 없기 때문에 넘어간다. 대신 말이 나왔으니 [Turnstiles] 앨범에 대해서는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빌리 조엘 최고의 명반으로 1977년작인 [The Stranger]를 꼽는 데에 거의 주저함이 없다. 물론 정말 좋은 앨범임을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내 기준에서는 전작인 [Turnstiles]를 좀 더 우위에 놓고 싶은 마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The Stranger]는 그래도 내 성에 안 차는 곡이 한두 곡쯤 있는 반면, [Turnstiles]는 단 한 곡도 버릴 곡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New York State Of Mind'가 수록되어 있다. 앨범의 시작을 'Say Goodbye'로 시작하는 역설적인 트랙 'Say Goodbye To Hollywood'는 끝이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훗날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게 되는 'Just The Way You Are'의 사운드적 모태가 되는 듯한 'James'도 이 앨범의 숨은 명곡이다. 두 곡을 단순히 비교해 보아도 내 취향에는 'James'가 조금 더 마음에 든다. 'Just The Way You Are'는 구성이 너무 뚜렷해서 수가 너무 잘 읽힌달까. 예측을 자꾸만 벗어나는 'James'가 내 기준에선 좀 더 재밌게 들을 수 있는 곡인 듯하다.
[Turnstiles] 앨범 얘기를 하면서 본의 아니게 [The Stranger]를 너무 깐 것 같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The Stranger]는 함부로 까일 작품이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명반으로 추앙받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시샘이 나서 괜히 그래 본 것이다. 이 앨범은 'Movin' Out (Anthony's Song)'으로 강렬하게 시작하여 특유의 쓸쓸한 무드와 록킹한 메인 테마를 적절하게 대비시킨 명곡 'The Stranger'로 이어받는다. 그리고는 희대의 명곡 'Just The Way You Are'로 내닫는 것이다. 거를 타선이 없다. 음악으로 얻어맞는 기분이 아마 이런 기분일 것이다.
7분 38초라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Scenes From An Italian Restaurant' 같은 곡에서 잠깐 쉬어갈 수 있을 것 같다.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다양한 테마를 뒤섞어 두었는데, 내 기준에는 좀 산만하다. 너는 놀아라, 나는 쉬련다 하고 잠시 쉬다 보면 '그럼 이건 어떠냐, 요 녀석아' 하는 한 방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Vienna'이다. 속수무책이다. 맥락 없이 냅다 지르며 시작하는 도입부와 쓸쓸한 무드로 곱씹듯 마무리하는 후렴으로 '상승-하강'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선보인다. 아래에서 위를 향하는 팝의 구성을 보란 듯이 전복한 것이다. 어쩌겠는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이다.
창작의 샘은 마를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빌리 조엘은 1978년에도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52nd Street]이라는 제목으로, 이 앨범에도 'Honesty', 'Big Shot', 'My Life', 'Uptown Girl' 등의 히트곡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앨범에서 히트곡 말고 숨은 명곡 하나를 추천하고 싶다. 바로 'Zanzibar'이다. 잔지바르는 퀸(Queen)의 프론트 맨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아프리카의 지역 이름이다. 제목처럼 이 곡에도 신비하고 미묘한 분위기가 물씬 감돈다. 히트곡만 들으면 재미없으니까 한 번쯤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빌리 조엘은 1993년작인 [River Of Dreams] 이후로는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간간이 라이브 무대에는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보아 새로운 곡을 쓰고 내놓는 일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뭐, 그럴 수도 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가. 미친 듯이 확 쏟아낼 때가 있고,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딱 끊어져버릴 때가 있다. 빌리 조엘의 창작샘은 76~78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고, 90년대가 되자 싹 말라버렸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도 사람이니까.
웃기는 건 뭔지 아는가? 아무도 그에게 새로운 곡을 내놓으라고 성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그렇겠는가? 지금까지 내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멈춰 있지 않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것처럼, 빌리 조엘의 음악 또한 그러하다. 명작이 명작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