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프로듀서가 이끈 R&B 그룹
왼쪽부터 정규 2집 [Another Level] (1996), 1집 [Blackstreet] (1994), 3집 [Finally] (1999), 4집 [Level II] (2003)이다.
8~90년대 R&B 음악 씬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세 명의 프로듀서를 대라면, 로맨틱한 무드의 절대강자 베이비페이스(Babyface), 섹슈얼한 무드의 대가 알 켈리(R. Kelly), 댄서블한 뉴 잭 스윙의 거장 테디 라일리(Teddy Riley)를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 소개할 블랙스트릿(Blackstreet)은 바로 테디 라일리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R&B/힙합 그룹이다.
이들의 1집 앨범은 1994년에 발표되었으며, 보컬보다는 댄서블한 비트나 랩 등이 강조되어 힙합의 성격이 강한 앨범이다. 내적 댄스를 유발하는 'Baby Be Mine', 'U Blow Ma Mind', 'Booti Call' 같은 뉴 잭 스윙 곡들과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오리지널을 리메이크한 'Love's In Need', 가스펠을 연상케 하는 몽환적인 R&B 넘버 'Joy', 멤버인 데이브 홀리스터(Dave Hollister)의 뛰어난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Before I Let You Go' 같은 슬로우 템포의 곡들이 균형감 있게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진면목은 1996년 발표한 2집 [Another Level]에서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랩 위주였던 1집의 색깔에서 탈피하기 위해 테디 라일리는 본격적으로 보컬 멤버들을 찾아서 팀을 완전히 재정비했고, 댄서블한 비트 위주의 음악이라는 기존의 체제는 유지하되 R&B 보컬 하모니가 비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흑인음악 씬에서 거의 최고의 명반으로 떠받들어지는 이 작품, [Another Level]이다.
그 중에서도 타이틀로 내세운 'No Diggity (feat. Dr. Dre)'는 실로 대단하다.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고전 'Grandma's Hand'를 샘플링한 비트 위에 닥터 드레의 랩, 멤버들의 하모니가 차례차례 얹힌다.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듯한 새 멤버 마크 미들턴(Mark Middleton)의 애드리브는 단연 압권이다. 그 밖에도 뉴 잭 스윙의 댄서블한 감각을 잘 살린 'Fix', 블랙스트릿 표 R&B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듯한 'Good Lovin', 마크 미들턴의 절창을 느껴볼 수 있는 R&B 발라드 'Never Gonna Let You Go', 비틀스(The Beatles)의 오리지널을 좀 더 아련하게 재해석한 '(Money Can't) Buy Me Love', 절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이를 찬송하는 성가 'The Lord Is Real (Time Will Reveal)' 등 명곡의 향연이다.
2집은 칭찬하라면 더 할 수도 있다. 아무리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퍼부어도 모자랄 정도의 명반이다. 이 멤버 그대로 3집도 함께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떤 이유에선지 테디 라일리가 다음 앨범은 또 다른 멤버들로 새롭게 꾸려서 선보였다. 음악의 색채는 전반적으로 1집 때와 비슷하게 힙합과 랩 위주이다. 3집에 대해서는 별다른 할 말이 없고, 애착도 없다. 명반으로 칭송받는 2집 다음에 나온 행보가 이러하여 실망이 더 컸던 모양이다. 아무리 새로 여러 번 들어봐도 애정이 생기질 않는다.
당시 대중의 반응도 지금의 나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것을 의식해서인지 몰라도 테디 라일리는 다음 앨범에서 2집 때의 멤버들을 다시 만나 함께 작업하게 된다. 그 결과물이 정규 4집 [Level II]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의 화양연화는 2집에서 끝난 듯하다. 4집도 2집에 필적할 만큼 좋은 퀄리티를 내지 못하면서 결국 블랙스트릿이라는 팀은 이 앨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앨범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프로듀서 테디 라일리 얘기를 좀 더 해 보자. 오죽 잘했으면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 1991년에 [Dangerous] 앨범을 작업할 때 테디 라일리의 손을 대부분 빌려서 만들게 했을까. 테디 라일리는 댄서블하고 신나는 트랙을 많이 만들면서도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는 프로듀서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백인 취향에 편승한 록 기반의 음악을 주로 한다는 비판에 직면한 마이클 잭슨은 다음 앨범에서 반드시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그 해결사로 등장했던 인물이 바로 테디 라일리였던 것.
그런 테디 라일리가 이끌었던 R&B 그룹 블랙스트릿은 앨범마다 멤버를 바꾸어 가며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드러내는 데에 결과적으로는 성공한다. 사실 블랙스트릿의 음반 네 장을 한꺼번에 들어보면 테디 라일리의 음악적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그가 가진 음악의 영토가 얼마나 드넓은지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그러니 어찌 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