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달

눈을 감고 그저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겨 보아요

by Charles Walker
tempImageUENBDO.heic 두번째달 정규 1집 [두번째달] (2005)

2005년 한국 가요계의 키워드는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2003년 아소토 유니온(Asoto Union)의 등장을 시작으로 클래지콰이(Clazziquai), 더블유(W), 허밍 어반 스테레오(HUS) 등이 차례차례 나타나면서 통상적인 가요 문법에서 벗어난 다양한 음악적 시도들이 각광받던 시대였다. 그 역사에 당당히 한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밴드가 바로 오늘 소개할 '두번째달'이다.


두번째달의 음악은 정말로 독특하다. 아소토 유니온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받았는데, 국악기를 비롯하여 아이리시 휘슬, 젬베 등 국경을 초월한 다양한 악기를 한데 섞어서 어느 나라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들의 첫 정규 앨범이 한국 대중음악상 100대 명반에 자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다. 너무나도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달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처럼 독특한 음악을 하면서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낸 밴드는 없었다.


이성적 사고의 범주를 벗어난 어떤 것을 직면하게 되면 그 어떤 판단도 유보한 채 그저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게 된다. '여행의 시작'이라는 첫 곡은 너무나도 설득력 있는 앨범의 인트로 역할을 제대로 견인해 주었고, 이어지는 3박자의 '서쪽 하늘에'는 자연스레 노을빛 풍경을 떠올리게 된다. 두 트랙만 들었을 뿐인데도 이미 우리는 이들과 함께 어느 신비로운 나라의 대초원 혹은 산기슭을 거닐고 있다. 이들이 이끄는 대로 저벅저벅 걷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편안한 여행인가?


테마는 4번 트랙 'Eclipse of the Red Moon'에서부터 반전된다. 경쾌하게 시작했던 여행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긴장이 감돌게 되고, 음울한 기운이 깃든다. 삶이 그러하듯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두려움을 오래 간직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기 위해 주인공은 바다를 찾아서(5번 트랙-'바다를 꿈꾸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본다.


아마 6번 트랙 'The Boy From Wonderland'를 듣고 흠칫 놀라실 분들이 계실 수 있겠다. 너무나 익숙한 곡조 아닌가? 그렇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지에서 오밀조밀하고 아기자기한 무언가를 보여줄 때마다 이 음악이 흘러나왔었다. 언제 들어도 참 예쁜 음악이다. 이 음악이 두번째달 음악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The Boy'는 누굴까. 지금부터 주인공의 여행 동료가 되어줄 친구인 건 아닐까?


9번 트랙 '얼음연못'은 클래식의 뉘앙스가 언뜻 내비치는 비장하고도 아름다운 발라드이다. 장중하게 시작하는 피아노와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스트링의 조화가 무척이나 눈부시다. 이 곡까지 오면 앨범의 절반을 들은 셈인데, 주인공의 여행이 역시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춥고 황량한 얼음연못까지 도달한 주인공 일행은 저마다 외롭고 두렵다. 무엇을 찾아서 여기까지 떠나온 것일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도록 그립다. 마음을 나누는 대화와 소통(10번 트랙-'Communication')을 간절히 원한다.


장조와 단조를 무심하게 오가는 11번 트랙 '무지개'에 이르면 이들의 괴로운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이 여행은 삶이고, 삶이 곧 여행이다. 세상은 넓고 크며, 그에 비해 우리는 너무 작다. 세상의 거대한 질서 앞에서 우리의 일희일비는 보잘것없다. 그러니 옆에 있는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나의 목소리로 말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혼자 있을 이유도 없다. 당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 누군가라면 충분하다.


이 앨범은 자그마치 18트랙이라는 엄청난 곡 수를 자랑하는 대규모 앨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감고 장면을 상상하면서 들어보면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 한 권을 뚝딱 읽은 것 같은 입체적인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보컬 곡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음악만으로 충분히 서사적이다. 언어를 매개로 하지 않고 어떤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다. 이런 앨범이 벌써 20년 전에 가요계에 나왔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긍지를 가져도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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