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 (DEEZ)

네오 소울 사운드로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프로듀서

by Charles Walker
tempImageBAbaxj.heic 디즈 정규 1집 [Get Real] (2010)

디즈(본명 조현철)가 처음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것은 가수 BMK의 2003년작 데뷔 앨범인 [No More Music]의 3번 트랙 '우리'에서 BMK와 듀엣으로 호흡을 맞춘 장면에서였다. 그때는 사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훗날 이 정규 앨범을 듣고, '그때 그 조현철이 이렇게 됐다고?'라며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무려 지금 들어도 같은 사람으로 연결짓기 어려울 정도로 내공이 성장했음을 이 앨범 한 장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 앨범은 너무나도 한국화되어버린 R&B가 득세하던 2010년에 발표되었다. 당시 휘성, 거미,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등을 필두로 선보였던 R&B는 크레이그 데이빗(Craig David), 니요(Ne-Yo) 등 영미권 트렌드세터들의 사운드를 적극 수용하여 댄서블한 요소가 추가되었고, 전자음을 폭넓게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클럽 튠의 음악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박재범, 태양 등이 그 후발주자로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 앨범이 나온 것이다. 무려 '네오 소울(Neo Soul)'을 표방하고 말이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누군가가 그랬던가. 디즈의 이 앨범이 나왔을 때는 역사가 새로 쓰일 줄 알았다. 러브 송 일색의 달달한 R&B를 보란 듯이 비웃으며 네오 소울이 패권을 잡았던 90년대 미국에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네오 소울이 유행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희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그만큼 이 앨범의 퀄리티는 대단했다.


우선 미니무그(Minimoog) 전자 키보드를 활용해서 쓴 곡인 'Soul Tree'와 'Makin' Luv'만 들어봐도 디즈의 음악적 지향성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미니무그는 70년대에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악기 중 하나로, 명곡 'Superstition'의 반주에서 들을 수 있는 그 뭉근한 키보드 소리가 그것이다. 이후에도 미니무그는 소울풀한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쓰이곤 했는데, 디즈가 그 악기 소리를 가져온 것이다.


창법도 2003년 때와는 완벽하게 달라졌다. 다소 평이하게 들렸던 그때와는 달리, 라샨 패터슨(Rahsaan Patterson)을 많이 벤치마킹한 듯한 음색과 창법은 네오 소울을 부르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한국어 가사가 아니었다면 흑인 가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농익었고, 깊어져 있었다.


그러나 네오 소울과 로맨틱 무드를 섞어 내놓은 타이틀곡 'Sugar'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타이틀곡이기에 대중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는 걸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트랙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네오 소울이라는 컨셉트를 더 확고하게 밀고 갔더라면 차라리 더 좋은 결과를 받아들 수 있지 않았을까. 당장의 성과는 몰라도 한 우물만 파는 장인정신만큼은 분명히 인정받을 수 있었을 텐데.


다소 조잡한 'Skit'을 지나 이번에는 베이스 리듬이 강조된 'Devil's Candy'로 넘어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관능적이고 위악적으로 노래하는 디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딱 여기까지다.


듣다 보면 무려 당혹스러운 순간까지도 맞이하게 된다. 바로 '너 하나면 돼'라는 곡에서인데, 이 곡은 당시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전자음 가득 담은 댄서블 트랙이다. 소울이 1도 없는 이 곡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은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냥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은데, 문제는 이 곡과 가수가 지독하게 안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 앨범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한 앨범'이다. 뒷심이 심각하게 부족하다. 앞에서 보여준 음악적 내공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 컨셉트 그대로 끝까지 쭉 밀고 갔더라면 해외 시장도 분명히 노려볼 만한 소울이었다. 하지만 앨범 후반부에서 대차게 말아먹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디즈는 이 앨범 이후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지 않고, 주로 아이돌 그룹의 곡을 만드는 프로듀서로서 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현실에 체념한 걸까.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걸까.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에 만족한다면야 그걸로 그만이다. 그래도 어느 누군가가 한국 R&B는 천편일률적으로 사랑 타령만 하고 꾸부리만 한다며 투덜댄다면 디즈의 곡 'Soul Tree', 'Makin' Luv', 'Devil's Candy' 이 세 곡을 들려줘 보자. 이런 사람도 있었답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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