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 Tjader

라틴 재즈의 바람을 몰고 온 비브라폰 연주자

by Charles Walker
앨범 [Agua Dulce] (1971, 왼쪽), [Latin Kick] (1958, 오른쪽)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이름이다. 칼 체이더? 칼 제이더? 구글 기준으로는 '칼 체이더'라고 읽는 모양이다. 어쨌든 칼 체이더는 미국의 비브라폰 연주자로, 무려 라틴 국가의 음악인이 아니다! 라틴 음악에 한창 빠져 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Latin Kick] 앨범이 떴고, 그걸 들었을 때 마음에 들어서 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해 두고 있었다(그때도 정확히 읽지는 못했다. 칼 뭐시기...라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Latin Kick]이 1958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한 번 더 놀랐다. 물론 1958년의 미국이라면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도 이미 나왔고 캐논볼 애덜리(Cannonball Adderley)의 [Somethin' Else],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의 [Sarah Vaughan With Clifford Brown], 빌리 홀리데이의 [Lady In Satin] 같은 명반들도 심심찮게 들어볼 수 있었던 시대였지만, 이렇게 라틴 재즈를 본격적으로 내걸고 나온 작품이 이 이전에 있었나 생각해보면 언뜻 떠올리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라틴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쩜 이렇게 다양한 라틴 리듬을 한 앨범에 담아낼 수 있었는지. 그 당시에 어떤 뮤지션과 교류했기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가 너무 궁금하다. [Latin Kick]을 감명 깊게 들은 경험은 누군가가 다른 앨범인 [Agua Dulce]를 추천해 주는 것으로 이어졌다. [Latin Kick] 이후 1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칼 체이더의 음악은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을까?


첫 트랙 'Agua Dulce (Cool Ade)'는 무려 '보컬'이 들어간다. 게다가 다양한 퍼커션(Percussion, 각종 타악기)의 사용으로 듣는 재미가 훨씬 다채로워졌다. [Latin Kick]이 라틴 재즈를 미국인에게 소개하는 앨범이었다면, [Agua Dulce]는 댄스 파티를 위한 춤곡 모음집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훨씬 리드미컬하고, 댄서블하다. 이런 음악은 분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고 흔드는 수밖에.


라틴 재즈를 포함, 재즈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재즈가 어려운 이유는 그걸 자꾸 해체하고 분석하려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재즈는 그 당시 '춤곡'이었다. 이 음악에 맞춰서 당대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그저 즐겼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될 것이다.


음악에 대한 무분별한 분석과 해체는 결국 음악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할 뿐이다. 문학, 특히 시가 겪은 참상을 생각해 보라. 교육과정이라는 미명하에 잔인하게 도륙당한 수많은 시의 마스터피스들을 떠올려 보자. 우리 아이들은 이육사, 윤동주, 정지용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채 느끼지도 못한 채 시에 알레르기 반응부터 먼저 배운다. 음악, 특히 재즈가 그럴 위기에 처해 있다. 그만 분석하고 그만 해체하자. 그냥 듣고 느끼면 된다. 악기들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그저 좀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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