슴슴한 평양냉면 같은 싱어송라이터
왼쪽부터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 (2015), 정규 2집 [오, 사랑] (2005), 정규 4집 [Les Miserables] (2009), 정규 1집 [Lucid Fall] (2000), 미선이 1집 [Drifting] (1998)이다.
루시드 폴(Lucid Fall, 본명 조윤석)은 고즈넉함의 의인화인 듯하다. 이 오묘한 이름의 아티스트를 처음 알게 된 때는 2005년 [오, 사랑] 앨범 때부터였는데 그때 당시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한창 어릴 때니까... 자극적인 걸 좋아할 나이였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루시드 폴은 빼박 평양냉면이다. 기승전결도 없고,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테마가 뚜렷하지도 않다.
루시드 폴의 음악에서 매력을 찾기 위해서는 노랫말을 읽어야 한다. 그러니까 음악보다는 문학에 가까운 텍스트인 것이다. 외국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우리말로 덤덤하게 써내려간 노랫말은 루시드 폴 음악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가장 좋게 들었던 루시드 폴의 앨범은 2009년작 정규 4집 [Les Miserables]였다. 이 앨범은 동화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며 그간 루시드 폴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드라마틱한 요소가 굉장히 두드러져 있다. 특히 죽어가는 남성 화자가 부른 파트1과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여성 화자가 부른 파트2로 나뉘어 연작으로 구성한 3, 4번 트랙인 '레 미제라블'은 단연 압권이다.
그 밖에도 6번 트랙에 위치한 '고등어'도 재미있다. '나를 고를 때면 내 눈을 바라봐줘요. 난 눈을 감는 법도 몰라요.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라는 노랫말은 밥상에 반찬으로 오른 고등어의 입장에서 자신을 먹어주는(?) 사람을 향해 위로로 건네진다. 이처럼 루시드 폴은 독특한 시선과 발상으로 남다른 가사를 써낸다.
음악적인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그의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루시드 폴은 사실 1998년에 밴드 '미선이'의 보컬 조윤석으로 데뷔한 바 있다. 미선이의 데뷔 앨범 [Drifting]은 무려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뭐... 무지막지한 고음을 기대할 것까지는 없지만 루시드 폴 때보다는 훨씬 록킹하다. 덜 다듬어진 모습이 오히려 음악인에 가까워 보인달까?
2집 [오, 사랑]이나 4집 [Les Miserables]를 제외하면 루시드 폴의 음악을 자주 찾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 슴슴한 게 당길 때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