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 기대주에서 뮤지컬 배우로 변신하다
블랙핑크(BLACKPINK)의 리사가 등장하기 전, 밀레니엄의 초입에 등장했던 또 다른 리사가 있었다. 늘씬한 몸매와 뛰어난 미모, 그리고 그보다 더 훌륭한 가창력을 선보이며 한국 R&B의 기대주로 주목받았던 가수 리사(Lisa, 본명 정희선)이다. 리사는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앨범의 커버 이미지도 본인이 직접 작업하며 독특한 화풍을 선보인 바 있다.
리사의 데뷔곡은 '사랑하긴 했었나요'라는 어쿠스틱 팝 발라드인데, 진성과 가성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R&B 창법이 도드라지는 (상당히 난도가 높은) 곡이다. 리사는 무대 위에서 기복 없는 섬세한 라이브를 매번 선보이며 뛰어난 실력을 입증했다. 리사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박정현, 박화요비를 잇는 R&B 디바가 드디어 나오겠구나 하며 내 나름대로는 꽤 기대하며 주목했던 기억이 난다.
1집에서는 타이틀곡 '사랑하긴 했었나요' 외에도 '다 괜찮아요'라는 곡을 하나 더 추천하고 싶다. 전형적인 팝 발라드 형식을 취하는 곡인데, 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감정선을 너무나 잘 이끌어가는 리사의 보컬 연출 능력에 그저 감탄하며 들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컬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향후 뮤지컬 배우로의 전향도 수월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앨범 전체로 듣기엔 아쉬움이 컸던 1집과는 달리, 3년이 지나 발표한 정규 2집 [Mind Blowing]은 숨은 명반이다. 앨범 전곡이 다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하며, 특히 '인연 (feat. 바비킴)', '어떻게 그대는 왜', '헤어져야 사랑을 알죠', '작은 천국', 'With You (feat. 박효신)', '아니야 그런 말이'로 이어지는 2번부터 7번 트랙까지의 명곡 퍼레이드에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 밖에도 13번 트랙 'Remember Who You Are'도 함께 추천한다.
3집 [Featherlight]는 그 이듬해인 2007년에 나왔는데, '그려 봅니다'라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으나 반응은 미진했다. 그 이후 정규 앨범 발표는 없었으며, 몇 개의 싱글 발표 후 뮤지컬 배우로의 전향 소식이 들려왔다. 실제로 리사는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뮤지컬학과에 진학하여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배우로 호평받고 있다고 한다. 다시 가수로 돌아올 확률은 적겠지만,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면 그걸로 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