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일기 D+3

나이가 애매하게 많거나 적음에 대하여

by Charles Walker

뭐... 내가 담배를 끊고 나서 뭔가 대단한 걸 하려는 건 아니다. 다시 노래를 제대로 시작해 볼까 싶은 생각은 어렴풋이 있는데 솔직히 말해 자신은 없다. 걸리는 부분은 단연코 '나이'다.


루더 밴드로스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솔로 1집을 발표했고, 세계적인 성악가 폴 포츠도 (내가 알기로는) 사십 대에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좋은 재능을 타고났으며, 어떤 결과물을 내지 않더라도 꾸준히 연구하고 연습해 왔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나처럼 순간순간 닥치는 대로 살아왔던 이에게는 언감생심, 바랄 걸 바라야지.


'그럼 연습을 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일단 우리 가족 구성원들 중에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뿐이며, 그중 큰소리에 예민하여 시끄러운 걸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고로 집에서는 연습 절대 불가. 그럼 학교에서 할까? 어느 미친 놈이 그 꼴을 봐 주겠는가? 학교에서도 불가. 그럼 나 혼자 시간과 돈을 따로 들여서 연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그럴 만한 가치가 있을까?나 하나 즐겁자고 그 정도의 소모를 감당해야 할 만큼 나 자신만의 취미나 기호가 더 이상은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뭔가 새로운 걸 배우려고 해도 죄다 젊은(때로는 어린) 사람들 사이에 섞여야 한다. 그게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면 참 좋겠지만, 나는 그런 주변머리마저 없어서 그게 안 된다. 그렇다고 내가 늙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늙은 사람들 사이에 내가 섞여 있는 것 또한 심히 어색하다. 듀스의 노랫말,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우리는). 정말 오래된 표현이지만 자주 쓰이는 이유가 있다. 짤막하게 압축되었지만 이 질문은 우리 실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유도한다. 이 질문에 섣불리 답할 수 없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게다.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 했다. 혹하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공자님 시대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의 마흔은 위태롭다. 소속감이 없어 잔바람에도 흔들리고, 정체성이 없어 언제나 외롭다. 자기 존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에 회의적이다. 안 그런 마흔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얼마 전 목숨줄을 스스로 놓아버리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은 그러기에도 귀찮아져버린 상태이다. 그래서 일단 살아보기로 하고 살고 있는데, 때때로 웃을 일도 생기고 가끔은 즐겁기도 하다. 우습게도, 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다. 그래. 일부러 끊을 필요야 있겠는가.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데려가실려고. 죽기도 귀찮으니 그냥 살자. 자살하지 말고 그냥 살자.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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