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자와 사랑
오늘도 부러 늦게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있다. 내가 여태껏 해왔던 모든 습관들과 반대로 행동하는 중이다. 이것도 나름대로 할 만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
몸은 멈춰 두었지만 정신은 왜 그리도 바쁜지. 생각하고 싶어 안달난 것처럼 내게 질문을 쏟아낸다. 오늘의 주제는 '사랑'이다. 더 나아가서, 이상주의자가 사랑할 때 일어나는 불행들.
살면서 이상주의자도 타협이라는 걸 한다. 그러지 않았다가는 제 이상에 자기가 타 죽는다. 나 또한 많은 면에서 타협해 왔다. 타 죽지 않기 위해서.
아내는 전형적인 생활인이다. 결혼하기 전엔 전혀 몰랐다. 나는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이상주의자며,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아내는 생활인으로서 참 열심히 살았다. 재계약에 실패한 기간제교사가 임용에 몇 번이나 낙방하는 걸 보면서도 잔소리 한 번을 안 했다. 자기만 믿으라고.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면 되는 거라고 말하며 주저앉으려는 나를 번번이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에 왔다. 남들이 부러워 마지않을 직장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뻗어버린 남편에게, 휴직급여는 본봉의 70퍼센트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목도한 지금, 아내는 처음으로 싫은 소리를 했다. 이사도 가야 하는데 이 돈으로 어떻게 하라고. 집을 사서 가는 건 이제 꿈도 못 꾸겠다고. 아내는 울면서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당신 자살 안 하게 지켜야 하지, 아들 키워야지, 나라고 충동이 없었는 줄 아냐고, 아내는 울부짖었다.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동안 내가 참아 왔던 것들은 삶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그러니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젠, 중독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담배, 그리고 엘피. 뭐든지 너무 과하면 중독이다. 그러니 중독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그것들이 생각날 때면 아내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럼 끊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