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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룬 Nov 10. 2023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

네 번째 수업



  강의실에 들어서니 강사 다니엘라가 작은 매거진 하나를 건넨다. 이곳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인데 한번 읽어보라고 말이다. 이번호에는 우리와 같이 수업을 하고 있는 제롬의 글이 들어있다고 한다. 그를 쳐다보자 머쓱하게 웃는다. 매거진이라기보다는 글쓰기 수업을 듣는 사람들의 글을 모아둔 문집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해 보이는 소박한 책이었지만, 매 계절별로 글을 모아 책을 발행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를 넘겨보며 예산은 얼마인가, 디자인을 좀 더 신경 써도 되었을 텐데, 다른 콘텐츠는 없나 하며 괜한 평가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쓴 글을 발행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껍데기가 무슨 상관인가. 


  한 동안 회사에서 발행하는 매거진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 잡지의 꼭지 하나를 맡아 쓰면서, 내가 담당자라면 좀 더 예쁘게 만들고 싶다던가, 어떤 콘셉트를 하고 싶다던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담당자가 되었다. 나의 주도하에 발행하는 첫 호를 만들던 때 문장 하나하나 쓰고 고치기를 수십 번 반복했다. 디자인도 마찬가지이다. 전체 콘셉트부터 페이지 한 장 한 장에 들어가는 사진을 고르고 또 골랐고, 디자인을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그렇게 발행한 매거진을 받아 든 사람들은 휘리릭 책을 넘기다 맘에 드는 사진이 나오면 잠시 글을 읽고, 또다시 페이지를 넘겨보다가 "와 기획이 진짜 좋다!", "전보다 훨씬 예쁘다.", "정말 잘 만들었다."는 진심 어린 칭찬을 해주었다. 사실 직원들은 그 책을 훑어본다는 느낌이었지, 읽는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읽는 사람"은 너무도 소중했다.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칭찬은 무엇보다도 글에 대한 것이었다. 종종 내 자리에 도착한 구독자들의 엽서에 내 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을 때면, 그날은 밤을 새도 피곤하지 않을 기분으로 일을 하곤 했다. 


  이미지라고는 표지밖에 없는 작은 책자를 다시 펼쳐본다. 나의 시선이 글에 한참을 머문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글의 주인에게 내가 좋았던 부분을 이야기해 주어 본다. 잠시 후, 다니엘라가 다시 안내문을 건네준다. 글을 고치는 것은 자기가 도와줄 테니 다음호에는 나에게도 글을 제출해 달란다.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저쪽에서 누군가 외친다. "네가 저번에 쓴 롤러코스터! 난 그거 너무 좋았어!" 처음으로 구독자 엽서를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이 생각났다. 부끄럽지만 기분 좋은 칭찬. 내 글을 읽고 마음에 남긴 사람이 있구나 하는 기쁨. 


  디자인도 인쇄도 볼품없는 작은 책.  하지만 그 속에 사람들이 정성스레 써 내려간 글이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책은 다른 사람들이 아마추어 작가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책이 예쁘게 생겨서가 아니라 글을 읽고자 책을 펼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그 글들 중 하나를 기억에 남기겠지. 집으로 오는 길에 무엇을 써야 할까 곰곰이 고민해 본다. 낯선 이 나라에 내 이름이 적힌 글을 하나 남기고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면서. 누군가는 그 글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글을 모은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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