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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룬 Oct 14. 2023

다른 언어로 글을 쓴다는 것



아이들의 커뮤니티센터 수업을 등록하려고 찾아본 프로그램 목록에서 어른들을 위한 글쓰기 수업을 발견한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강좌소개를 유심히 바라보다 창을 닫았다. 현지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벅찰 때가 많은데, 영어로 글을 그것도 창작글을 쓴다는 것이 자신 없었다. 이후로도 서너 번, 아이들의 수업 강좌 신청을 할 때마다 글쓰기 수업 창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이제 곧 직장에도 복귀해야 하고 더 이상은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아 아니면 취소하지 하는 마음으로 'Creative Writing'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 첫날

강의실에 들어서니 다민족의 도시답게 출신이 다양한 이들이 앉아 있다. 불가리아 출신의 강사를 시작으로 잉글랜드, 이란, 인도, 핀란드, 중국, 캐나다 출신의 사람들. 인종이 다양할 뿐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그것도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 앞에 서니 내 영어의 어휘력이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다. 대학생들의 문학 수업에 초등학생이 참여한 느낌이지만, 수업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If you are a natural phemomenon what would you be and why?"

한국말이었다 해도 선뜻 답변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질문들인데, 영어로 답을 써야 한다니 머리가 하얘진다. 시험도 아니고, 답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폼나는 필기체로 슥슥 써 내려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다 느리지만 한 글자씩 생각을 적어본다. 천둥, 번개, 파도, 눈꽃, 싱크홀, 달의 위상까지 그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그리고 각각의 답 속에 마음속 이야기들이 하나씩 묻어 나왔다. 아직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글로 써서 읽어주는 그들의 이야기엔 그들이 의도한 문학적인 표현들이 들어있다. 각기 다른 정서를 담은 비유적 표현이 바로 와닿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각자 되고 싶은 natural phenomenon과 man-made thing


영어로 쓰인 시

영시를 받아 들고 생각해 보니 나는 영시를 읽어본 적이 없다. 아마도 어딘가에서 본 적은 있겠지만. 수업의 강사인 다니엘라는 에다 리몽의 Ancester(선조, 조상)라는 시를 건넸다. chert, obsidian, laurel, the brick of light...  시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전에 처음 보는 단어들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 느낌. 그런데 이 시의 표현을 이용해 자신의 시를 써보란다. 맙소사. 다니엘라가 제시한 것은 'I've come here', 'I don't remember', 'Imageine'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차례차례 발표를 시작했다. 아픈 엄마에 대한 기억. 맞은편의 70대 할머니가 눈물을 짓는다. 이란 출신의 50대 여성이 차별받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한다. 그녀의 목이 메어 온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은 이해하고, 반은 이해하지 못한채 내 순서가 오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I've come here to live

I came here after leaving

I don't remember what brought me here

but I remember what I've brought here

I don't remember how to leave my old memory

...(이하생략)


뭘 쓰려고 했는지도 모르는 글을 남들 앞에서 읽어 내려간다는 것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이 있다. 게다가 나는 브로큰잉글리쉬를 사용하는 외국인이고 그들은 원어민이다. 입을 떼기가 힘들지만, 모두가 나를 쳐다보고 있으니 어쩌랴.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고 나니 생각보다 더 민망하다.  


모두의 글을 들은 다니엘라는 사람들의 글에서 하나라도 좋은 부분을 찾아내어 칭찬했다. 무얼 써야 할지 모르겠어도 일단 아무 말이나 쓰기 시작하라고, 그러다 보면 무언가가 써져 있기 마련이며, 그중에는 나도 모르던 생각이 나오니 그 모든 과정을 즐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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