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이 피던 계절

IMF 시대 소년들의 잔혹한 성장기

by 김재훈

암흑의 시작 - 1997년


1997년 11월,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IMF. 세 글자가 온 나라를 휩쓸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한강의 기적'을 외치며 잘 살고 있다고 믿었던 어른들의 얼굴에는 하루아침에 절망이 스며들었다. 신문 1면에는 매일 '부도', '실업', '구조조정'이라는 검은 글씨가 춤췄고, TV에서는 울부짖는 가장들의 모습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열네 살이던 나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기 시작했고, 어머니가 밤늦게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는 횟수가 늘어났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동네 슈퍼 아저씨는 어느 날 갑자기 가게 문을 닫았고, 옆집 아줌마는 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 무렵 기택이가 우리 반에 전학을 왔다.


"박기택입니다."


자기소개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또래 아이들과는 달랐다. 굵고 거칠었다. 키는 우리 반에서 가장 컸고, 어깨는 이미 어른 남자만큼 벌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눈빛이 달랐다. 14살 소년의 눈에 담기기에는 너무도 차갑고 경계심 어린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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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 아버지가 조폭이래."


쉬는 시간에 누군가 속삭였다. 아이들은 기택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에게 끌렸다. 정확히는 그의 고립감에 끌렸다. 나 역시 IMF 이후 우울해진 가정 분위기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고, 그 쓸쓸함이 기택이의 눈빛 속 고독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첫 대화는 옥상에서였다. 기택이가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신고할 거야?"


기택이의 질문에는 도전과 체념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아니."

"왜?"

"궁금해서."


그날부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상처받은 동물들이 되었다.




어둠의 그림자 - 1998년~1999년


IMF의 여파는 끝날 줄 몰랐다. 1998년, 실업률은 7%를 넘어섰고 거리마다 '급전대출', '카드깡', '전당포'라는 간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기택이네 동네는 특히 심했다. 쪽방촌과 판잣집들 사이로 술집과 도박장이 들어섰고, 밤이면 취객들의 고함소리와 깨지는 유리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기택이의 집에 처음 갔던 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복도에서부터 알코올과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는 깨진 소주병 조각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벽에는 주먹으로 뚫린 구멍들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낡은 브라운관 TV에서는 경마 중계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돼지저금통이 깨진 채 동전들이 흩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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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일 나가셨어."


거짓말이었다. 기택이 어머니는 안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고 있었다. 가끔씩 새어나오는 흐느낌 소리가 들렸지만, 기택이는 그 소리를 못 들은 척했다.


"아버지는?"

"일 하러 가셨어."


그 '일'이 무엇인지는 그날 밤에 알았다. 새벽 2시쯤 기택이 아버지가 돌아왔다. 문을 발로 차며 들어오더니 곧바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쌍년이 또 어디 숨어 있어!"


술 냄새와 함께 피 냄새가 났다. 셔츠에는 누군가의 피가 튀어 있었고, 주먹에는 상처가 나 있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버지의 '일'이 주먹으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돈 어디 있어! 말해!"

"아이고, 화상아..."

"닥쳐! 이 더러운 년이!"


둔탁한 타격음이 계속 이어졌다. 기택이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도 태연하게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표정만은 무덤덤했다.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풍경이었다.


"기택아..."

"그냥 먹어. 원래 이래."


그때 깨달았다. 기택이는 이미 많이 부서져 있었고, 그 부서진 조각들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자신과 주변을 베고 있다는 것을.


1999년이 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연일 대기업 부도 소식이 이어졌다. 기택이 아버지의 폭력도 더욱 잦아졌다. 마약도 하기 시작했다. 기택이는 그 모든 것을 견디며 학교에 나왔지만, 점점 다른 아이가 되어갔다.


"야, 돈 있어?"


후배들에게 돈을 구하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처음에는 "빌려달라"고 했지만, 점점 협박조로 변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그대로였다.




벼랑 끝으로 - 2000년


새천년이 밝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IMF는 끝났다고 했지만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했다. 기택이네는 더욱 심했다. 아버지의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사채업자들이 집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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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개새끼들아! 돈 없다고 했잖아!"


기택이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복도까지 들렸다. 그러고는 쿵쿵거리며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 문을 쾅 닫는 소리. 그리고 여자의 비명.


"엄마 때리지 마!"


어느 날 기택이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맞섰다. 열일곱 살 소년이 술에 취한 아버지의 주먹을 막아선 것이다.


"이 새끼가?"


기택이 아버지는 아들을 한 대 후려쳤다. 기택이는 넘어졌지만 일어나서 다시 아버지 앞을 막아섰다.


"그만해요."

"누가 누구한테 그만하라는 거야?"


그날 기택이는 집에서 쫓겨났다. 며칠 동안 우리 집에서 잤는데, 밤마다 이를 갈며 악몽을 꾸었다.


"죽여버릴 거야. 언젠가는."


잠꼬대였지만 너무 선명했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학교 밖에서 기택이의 행동은 점점 거칠어졌다. 후배들을 때리고, 돈을 뺏고, 급기야는 칼을 꺼내 위협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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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또 빈손으로 오면 손가락을 자른다."


커터칼로 후배의 손등을 그었을 때, 나는 기택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폭력을 고스란히 학습한 또 다른 괴물이 된 것이다.


그 사건으로 기택이는 소년원에 갔다.




철창 속의 교육 - 2001년


"여기가 진짜 학교야."


소년원 면회실에서 만난 기택이의 첫 마디였다. 6개월 만에 본 기택이는 더욱 커져 있었다. 키도 자랐고 어깨도 넓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완전히 차갑고 무감정한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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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형들이 진짜 쩔어. 사람 죽여본 형도 있고, 조직 들어가서 떼돈 번 형들도 있고."


기택이는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소년원이 그를 교화시킨 게 아니라 더 깊은 어둠으로 이끌고 있었다.


"나도 나가면 바로 조직 들어갈 거다. 형들이 소개해준다고 했어."

"기택아, 그러지 마. 제대로 살자."

"제대로? 뭐가 제대론데? 공부해서 대학 가고 취직하고? 그런 게 제대로 사는 거야?"


기택이의 목소리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데? 가난해서 잘못이야? 배우지 못해서 잘못이야? 이 더러운 세상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야."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었으니까.


2001년 가을, 기택이가 소년원에서 나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곳은 없었다. 기택이 아버지는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야반도주했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이제 정말 혼자네."


기택이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후, 진짜로 조직에 들어갔다.




마지막 빛과 어둠의 춤 - 2002년


2002년은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였던 해였다. 월드컵이라는 축제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다. 거리마다 "대한민국! 대한민국!" 함성이 울렸고, 시청 앞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모여 붉은 악마가 되어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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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열기에 휩싸였다.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고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히딩크 감독과 안정환, 이영표, 박지성... 그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기택이는 달랐다.


"무슨 월드컵이야. 나와는 상관없는 세상 얘기지."


가끔 만날 때마다 기택이는 더욱 메말라 보였다. 조직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매일 누군가를 위협하고, 돈을 걷고, 맞거나 때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나 이제 진짜 끝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 기택이가 한 말이었다. 경쟁 조직과의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만둬, 기택아. 아직 늦지 않았어."

"늦었어. 이미 너무 늦었어."


기택이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가득했다.


그리고 한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한 그날 밤,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 바로 그날 밤에 비극은 일어났다.




영원한 이별


"기택이가... 기택이가 칼에 찔려서..."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기택이는 이미 차가워져 있었다. 열아홉 살, 꽃다운 나이에 너무도 참혹한 모습으로.


장례식장은 텅 비어 있었다. 조직 사람들도, 학교 친구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기택이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았고,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기택이의 영정 앞에서 나는 펑펑 울었다. 분노와 슬픔과 무력감이 뒤섞인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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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아, 미안해. 내가 너를 못 말렸어."


기택이를 이렇게 만든 건 나도, 기택이 자신도 아니었다. IMF라는 거대한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가장 약한 자들이 가장 먼저 무너져 내린 것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흔적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택이의 얼굴이 종종 떠오른다. 특히 사회 뉴스를 볼 때마다. 청소년 범죄, 가정폭력, 빈부격차... 그때와 다르지 않은 현실들을 마주할 때마다.


IMF로 시작된 우리의 청소년 시절.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세대에게는 독특한 상처가 있다.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린 어른들의 세계를 지켜봐야 했던 아이들의 상처. 그 상처는 어떤 이에게는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어떤 이에게는 파멸의 씨앗이 되었다.


기택이는 후자였다. 그리고 나는 운 좋게도 전자였다. 그 차이가 뭐였을까? 조금 더 나은 가정환경? 조금 더 좋은 선택들? 아니면 단순한 운?


지금도 답을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기택이 같은 아이들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절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내밀 수 있는 손길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기택아, 우리가 다른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너의 삶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


여전히 답 없는 질문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질문이야말로 기택이가 내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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