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 대신, 아이 이름으로 기부한 20만 원

영어 단어보다 중요한 삶의 문장들

by 김재훈

"영어학원은 보내야 하지 않을까?"
아내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꼭 그래야 해?"


초등학생이 평균 2.3개의 학원을 다니고, 월 30만~50만 원을 사교육비로 쓴다는 통계를 보았다. 주변 엄마들 중엔 영어·수학·코딩·예체능까지 매일 다른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다. 그들을 보며 불안해지는 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다.


아내와 나는 한동안 그 문제로 다투었다. 영어학원을 보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혹시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있었다. 한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건, 끊임없이 주변과 자신을 비교하게 만드는 환경과 싸우는 일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고3까지 영어학원에 한 번도 다닌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미국 대학의 학위를 받았으며, 외국계 회사에서 일했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을 바쁘게 채운 건 학원이 아니라 축구공, 친구들과의 모험, 그리고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도 믿는다. 초등학생 시절은 열심히 놀고, 신체를 단련하고, 인문학적 감수성을 키워야 할 때라고. 언젠가 영어는 배우면 되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타협점을 찾았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던 미술학원, 그리고 내가 원했던 독서 논술학원. 둘 다 보내기로 했다. 아이는 두 곳 모두에 푹 빠져 있다.


그리고 영어학원비로 아껴진 20만 원은 매달 아이 이름으로 사회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처음엔 아이도 ‘왜 그걸 하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후원자 모임에 함께 참석한 날, 아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아빠, 저 언니는 왜 저렇게 아파?"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거야."
"나 계속 도와주고 싶어."


나는 확신하게 됐다. 영어 단어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과 책임감, 그리고 나눔의 기쁨을 아는 마음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 아이는 영어학원 대신 세상의 아픔을 배우고 있다. 나는 이 선택이 우리 아이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사교육보다 인성교육.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결국 잘 살아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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