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턴의 봄

내 유학의 시작

by 김재훈

성호는 교회에서 가장 맑은 눈빛으로 말씀을 경청하던 두 살 어린 동생이었다. 그의 믿음은 언제나 나보다 한 걸음 앞서 있었고, 그런 그가 어느 날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꿀 한 마디를 건넸다.


"형, 우리 같이 미국 가자."


처음에는 단순한 제안으로만 들렸다. 교회에서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비전트립을 떠나는데, 인솔할 대학생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군 제대 후 전문대학에서 바쁜 학업에 매진하고 있었기에, 40일이라는 긴 여정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미안해, 성호야. 학교 때문에 시간이 안 날 것 같아."


하지만 성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의 권유는 계속되었다. 어느 날은 심지어 이런 말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형과 꼭 함께 미국을 가야 한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살짝 웃었다. '신앙적인 핑계까지 대는구나.' 하지만 그의 간절함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결국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한 나는 부모님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저녁 식사 후, 거실에 앉아계신 아버지께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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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성호가 미국 비전트립에 같이 가자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깊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공부도 좋지만, 그래도 이번 기회에 세상을 넓게 보는 의미로 미국 다녀오면 어떻겠냐? 때로는 계획에 없던 길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단다."


그 말씀에 묘한 안도감이 찾아왔다. 다음 날, 성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호야, 같이 가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환호성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5월의 마지막 주, 우리는 인천공항에 모였다. 초등학생 20명, 부모님 6명, 그리고 대학생 인솔자 3명.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표정으로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시카고의 한인교회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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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트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40일의 여정은 매주 다른 테마로 진행되었다. 기독교 대학교 탐방, 역사 유적지 방문, 미국 교회 예배 참석 등 신앙적인 활동부터 워터파크, 해변, 놀이동산 같은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까지 알차게 구성되어 있었다.


처음 며칠은 시차 적응으로 힘들었지만, 점차 미국의 광활함과 다양성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시카고의 장대한 고층 빌딩들, 미시간 호수의 끝없는 수평선, 그리고 처음 만나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는 나의 좁았던 세계관을 조금씩 넓혀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여행의 마지막 주, 아이비리그 탐방에서 시작되었다.




뉴저지의 작은 마을 프린스턴에 도착한 것은 6월의 어느 화창한 오후였다. 마을 입구의 돌다리를 건너며, 강물 위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곳을 찾아온 듯한 친숙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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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턴 대학교의 캠퍼스는 영화 속 장면처럼 펼쳐졌다. 몇 세기를 견뎌온 듯한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안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움직이는 젊은 영혼들의 에너지로 생기가 넘쳤다.


파이어스톤 도서관의 고서들이 가득한 서가 사이를 걷다가,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수백 년 전 책의 가죽 냄새와 나무 향이 코끝을 스쳤다. 이곳에서 몇 세대에 걸친 지성들이 세상을 바꿀 생각의 싹을 틔웠다는 사실이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진갈색 목재 패널이 둘러싸인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는, 마침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에 학생들이 집중하는 모습, 질문과 토론이 자유롭게 오가는 광경은 내가 경험해 본 적 없는 교육의 장면이었다.


교정을 거닐며 본 풍경들은 더욱 인상적이었다. 채플룸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오색찬란한 빛줄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 책을 읽는 학생들, 다람쥐에게 도토리를 건네는 소녀의 미소, 프리즈비를 던지며 웃음꽃을 피우는 친구들.


그 모든 장면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의 경직된 교육 환경에서 자라온 나에게, 이곳의 자유로움과 지적 열정은 충격적일 만큼 매력적이었다.


캠퍼스의 한 구석, 낫소 홀 앞 벤치에 홀로 앉았을 때였다. 문득 내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던 열정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 강렬한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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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런 곳에서 공부해 보면 소원이 없겠다.'


그 순간, 마음속에서 작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후 하버드, 예일, 브라운 대학교 등 여러 명문대를 방문했지만, 프린스턴에서 느꼈던 그 특별한 감동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마치 첫사랑처럼, 프린스턴의 기억은 선명하게 내 마음에 새겨져 있었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긴 시간 동안, 나는 끊임없이 프린스턴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미국 유학을 가야겠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날, 부모님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집으로 돌아와 식탁에 둘러앉아 여행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나는 모든 경험을 생생하게 전했다. 시카고의 장대한 건물들, 그랜드 캐니언의 경이로운 절벽, 워싱턴 D.C. 의 역사적 순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프린스턴에서 무언가를 느꼈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나는 프린스턴에서 경험한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마침내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어요."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부모님의 표정이 굳어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 가정의 형편이 넉넉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중견기업에서 회사원으로 일하시며 우리 가족을 부양하셨다. 두 분 다 성실하게 일하셨지만, 급여가 그렇게 높지 않았기에 항상 절약하며 살아왔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다. 내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께서 천천히 눈을 뜨셨다. 그의 눈에는 내가 본 적 없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가라. 가서 네가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해봐."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네가 없는 동안 꿈을 여러 번 꿨다. 재훈이가 드넓은 들판에 서 있는데, 뒤 배경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국적인 느낌의 장소였다. 이런 꿈을 계속 꾸는데... 네가 미국을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깃들어 있었다.


"성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너를 미국에 보내실 계획이 있으셨나 보다. 그러니 하나님 의지하고 가보자. 하나님께서 길을 만드셨으니 어떡해서든 유학비도 만들어주시지 않겠니?"


그 순간,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자, 감사의 눈물이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아주셨다.


그날 밤, 창밖의 별을 바라보며 나는 모든 것이 하나의 큰 그림처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교회에서 갑자기 시작된 미국 비전트립 프로그램, 성호의 끈질긴 권유와 기도, 프린스턴에서의 강렬한 경험, 그리고 아버지의 반복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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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었다.


프린스턴의 봄 햇살 아래 싹튼 작은 씨앗은, 이제 내 인생을 변화시킬 큰 나무로 자라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정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나의 새로운 장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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