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만이 소통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에 대한 화두가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인간관계, 가정, 학교, 직장, 비즈니스, 지역공동체 등, 소통이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주요 스킬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주제로 한 엄청난 종류의 서적, 강연들이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고, 대학에서 전공 주제로도 다룰 정도이다. 심지어 코로나 팬데믹을 전후로 SNS를 통한 비대면 소통에 대한 중요성도 활발히 대두되고 있다.
그럼 소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막힘 없이 잘 통하는 상태를 말한다. 소통이 잘 된다는 의미는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지는 상태를 말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직접적인 만남이든 온라인을 통한 접촉이든, 소통하는 형태나 방법에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이나 바람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소통이 좀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또는 소통하기 어려운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많다. 소통에서 막히는 어려움을 개선해보고자 노력해도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별다른 효과가 없을 때도 있다.
책 몇 권을 읽거나 강의 몇 번 듣고 금방 마스터할 수 있는 스킬이라면 소통의 키워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소통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아직도 식지 않는 이유가 이를 잘 방증하는 듯하다.
또한 디지털 문명의 가속화와 팬데믹과 같이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방해하는 외부적인 요인도 함께 작용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어떠한 조건에 놓이게 되든, 사람들과 세상과 관계 맺기를 잘하며 소통을 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관심사이다.
해외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의 관계 유지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 거주 연수가 늘고 점점 인간관계의 폭도 좁아지면서 나 역시 소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의 팬데믹으로 인해 지인들과의 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도 사실이다.
멀어져 버린 듯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리고 외적 요인과 상관없이 소통이 잘 되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근에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며 답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소통에 대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우연히 본 뮤직비디오에서 받은 영감 덕분이다.
감동적인 메타포 (은유)의 사용으로 무척 인상 깊은 영상이었다.
또 소통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좋았다.
잠깐 여기서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 유튜브 링크를 참조 바란다.
Krzysztof Zalewski - Miłość Miłość (Official Video) - YouTube
폴란드의 유명한 아티스트 크쉬스토프 잘렙스키 (Krzysztof Zalewski)의 노래 ‘Miłość Miłość’ (‘미워시치 미워시치’ 라고 발음함. ‘미워시치’의 뜻은 폴란드어로 사랑을 의미함)라는 뮤직비디오이다.
그런데 영상에 놀랍게도 한국어가 나오지 않는가? 그래서 더더욱 유심히 영상을 보게 되었다.
“대인관계를 만드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서로의 믿음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라고 예술가 역을 맡은 한국인의 멘트로 뮤직비디오가 시작한다. 곧이어 무대에 다정해 보이는 남녀 커플이 등장하는데 이 곡의 작사/작곡자이기도 한 잘렙스키가 남성역을 맡았다.
예술가는 커플의 어깨와 다리에 겹겹이 얹힌 판자에 커피잔을 올리는 아슬아슬한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수많은 커피잔이 올려지고 묘한 긴장감과 위기감이 고조되자 결국 여자가 박치고 나가면서 찻잔들이 산산조각 깨지는 장면으로 영상이 끝난다.
참고로 이 퍼포먼스는 행위예술가로 알려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고 연출했다고 한다.
만남의 장소에는 항상 차나 커피가 든 찻잔이 있다.
찻잔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속에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지속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 깨지기도 쉬운 찻잔이라서 조심조심 다루어야 하는 면도 있다.
찻잔과 같이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소재로 퍼포먼스를 연출한 점이 흥미롭다.
관계를 맺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관계를 깨뜨리지 않고 유지해 나가는 것도 쉽지 않다.
더욱이 한번 뒤틀린 관계는 복구하기도 어렵다.
잘렙스키에 의하면 사람들은 관계를 맺을 때 서로를 이어주고 긴밀하게 만들어주는 다리를 만든다고 한다.
그 관계의 다리는 수천 가지의 사소한 일과 사물, 때로는 주변의 시선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많을수록 관계의 다리는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도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나에게는 소통의 의미로 더 다가왔다.
영상 내내 서로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은 한마디의 말도 주고받지 않는다.
침묵 속에서도 감정의 울림을 주고받는 가운데 소통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여자는 어떤 감정을 사용하고 표현하였으며, 그 남자에게서 무엇이 되돌아오기를 기대하였던 것일까?
남자는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여자와 어떻게 교감하길 원했을까?
커플 사이에 오고 간 미묘한 감정의 정체는 알 길이 없었지만 감정의 흐름과 기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다정해 보이던 커플이 어느 순간 관계가 일그러져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돌변한 것은 분명히 둘 사이에 일어난 감정의 기류 상의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가는 미묘한 비언어적인 소통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과 글 만이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다.
이외에도 교감을 하고 의사소통이 되는 것들이 있다. 눈빛, 표정, 몸짓, 작은 제스처, 움직임의 방향 등으로도 감정이 전달될 수 있다. 이 모두가 결국에는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물결에 대한 몸의 반응이다. 그래서 눈동자의 초점, 얼굴 표정의 미묘한 움직임으로도 상대의 감정을 상당 부분 캐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한다면, 사용하는 언어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방식에도 서로 결을 같이 하는 형태로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말은 근사한데 몸짓이 따로 놀면 안 되듯이, 눈빛이나 표정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과 뭔가 목적 없이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공감하는 가운데, 좋은 관계의 싹도 트고 진정한 소통도 가능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소통을 얼마나 잘하고 있을까?
비단 사람들과의 관계뿐이 아니다.
나 자신과의 소통, 깊숙한 나의 내면과의 소통, 그리고 나아가 세상과의 소통을 얼마나 잘하고 있는 것일까?
언어 및 비언어적인 모든 것들도 소통의 수단으로 삼고 나의 내면에도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자.
나의 내면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나의 내면과 소통의 방식에 엇박자가 나지는 않는지?
내 마음이 그 상대와 진정으로 소통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위한 소통인지?
조용히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어적인 소통이든 비언어적인 소통이든 내 감정의 흐름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온몸과 마음이 통합된 형태로 소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통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이든 적극 활용해 보자.
SNS에도 소통을 위한 나름의 순기능이 있으므로, 배워 의식적으로 잘 사용해 보자.
사실 나는 오랫동안 SNS 사용에 미적거려 왔다.
SNS로 이루어지는 관계는 질도 낮고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 만남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실질적인 접촉과 만남을 더 중시해 왔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고, 오래 계속되는 팬데믹에 오히려 SNS와 각종 온라인 매체로 소통을 계속할 수 있다는 유용한 측면도 보이게 되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비로소 시작하게 된 각종 SNS는 소통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었다.
비로소 그때 소통의 소중함을 어느 때보다 간절히 느꼈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독자들과의 소통을 위해서일 것이다.
글재주도 없고 특별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나의 생각과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풀어낼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고자 조금씩 한발 한발 내디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