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Home - 마이홈 변신’ 프로젝트
„이제 더이상 못 올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씩 우리집에 와서 청소를 도와주시던 우크라이나 분이 일을 그만두었다.
사정인즉슨 팬데믹으로 인해 고향에 놔둔 가족들을 돌보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도우미분을 찾기도 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팬데믹 초기였던 그 당시에는 누구나 직접적인 접촉을 기피하였다.
청소도우미 업무 특성상 개인 집에서 몇시간을 머물러 작업해야 하므로 더더욱 꺼렸다.
도우미쪽이든 서비스를 의뢰한 사람이든…
몇주째 밀린 집청소에 빨래더미..
더군다나 재택근무 시행으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늘어나면서
당장이라도 소매를 걷어서 집을 정리해야 했다.
누군가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수만 없었다.
당시는 코로나19사태가 터지고 아직 백신조차 개발이 되어 있지 않은 때였다.
정말이지 사람들과 눈만 마주쳐도 감염이 될 듯한
그런 이유없는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 때였다.
모두가 서로를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최대한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휴~ 지금 그때를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팬데믹으로 거리두기가 일반화되면서 학교나 기업체들이나 일제히 집에서 온라인으로 수업이나 업무가 이루어졌다. 나도 집에서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 잠을 자고 퇴근 후 휴식하던 공간이 어느새 사무실로도 기능을 해줄 필요가 생겼다. 더우기 남편 역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각자의 독립된 업무 공간도 필요했다.
처음엔 1-2달 정도이겠거니 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집에서 업무를 보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24시간을 집에서 업무를 보며 생활한다는 것이 다소 불편했다. 록다운의 장기화로 가까운 곳으로 짧은 여행조차 떠나지 못했을 때에는 마치 가택연금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전에는 취침, 목욕, 휴식 등 가장 기본적인 활동을 빼고는
생활의 모든 것들을 밖에서 해결해 왔다.
이사온지 10년이 다되어 가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에는
미처 손보지 못한 곳들이 수두룩하고 고장난 문이나 전자제품,
방치해둔 꽃나무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철 지난 옷가지들…
업무를 보는 책상 위에는 쌓아둔 서류뭉치와 책들로 무척이나 어수선했다.
매일같이 생활하면서 어떻게 이런 것들이 눈에 안들어왔을까 하며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그동안 한마디로 하숙집 수준으로 전락한 내집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당장 ‘My Home - 마이홈 변신’ 프로젝트 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프로젝트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프로젝트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들릴 테지만 솔직히 정리정돈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 머뭇할 자신이 눈에 선하였다.
‘My Home - 마이홈 변신’ 프로젝트
Day 1 쓰지 않는 집기와 입지 않는 옷들을 과감히 버리고,
Day 2 셀프인테리어용 자재를 사기 위해 장보러 가고,
Day 3 그동안 미뤄온 고장난 곳들을 수리하고,
Day 4 꽃나무 가지치기와 분갈이도 하고,
Day 5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상 위를 정돈하고,
Day 6 가구를 개조하여 옷가지들 제자리를 찾아주고,
Day 7 바닥과 유리창을 닦고,
Day 8 집기의 먼지를 털어내고,
Day 9 램프와 액자 등의 소품을 바꾸고,
Day 10 집의 조명을 조도를 높여 밝게 바꾸었다.
하나하나 따지고보면, 모두 소소한 작업들이었지만 한꺼번에 하려니 상당한 힘과 시간이 소요되었다.
작업 시작일과 마감일을 구분하여, 일기장에도 그날그날 할 일을 빼곡히 적고
마무리한 작업과 앞으로 남은 일을 점검하였다.
이 말고도 이것저것 손볼 데가 끝없이 보였지만,
스스로 실행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계를 긋기로 했다.
손수 집청소를 하고 손볼 곳을 찾아 직접 수리하고 정리하는 사이에
집이 꽤 괜찮은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내집에 애틋한 정이 들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주말에 반나절 집에 있다보면 답답함을 느껴 집밖을 나가기 일쑤였다.
이제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고,
내인생이 집이라는 공간에 여러모로 친숙해져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쉼 뿐 아니라 사색을 하거나 책을 읽고 공부도 하고 또 일도 하며,
맛있는 요리를 해서 손님을 초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자신의 내면을 탐색하고 진정한 나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축 처지는 듯한 나태의 느낌이 아닌,
무엇인가 해보고 싶은 일을 찾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창조를 해내는
재생과 창조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지금 하고 있는 글쓰기 역시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그 밖에도 디지탈 공간에서 벌이고 있는 다른 창작활동 역시 출발점은 집이라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집에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좋으며 내 집이 세상에서 최고의 공간이다.
비로소 내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마이홈 변신’ 프로젝트는 외관상으로는 작은 변화였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집이라는 공간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에 큰 변화를 가져다준 일대의 사건이기도 하다.
팬데믹이라는 외부적인 동기로 시작된 변화이기는 하지만 사실 내적인 동기도 컸다. 아마도 환경의 작은 변화를 시도하면서 한편으로 내 인생의 변화를 주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최근 수년 동안 나에게 크고 작은 시련이 닥치면서 어렵고 힘든 시기가 많았다. 집을 정성스레 가꾸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에 압도당하지 않고 나의 의지대로 주도적인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읽게 된 박성준 작가의 [운의 힘]이라는 책이 너무도 반가웠다. 지금까지 내가 겪었던 과정들을 아주 간결하게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글에서 저자는 자기가 사는 공간,
자신의 인생을 담아내고 있는 공간에 예의를 갖춰 대하라고 촉구한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마치 사람을 대하듯이 예의있게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에 의하면 집은 휴식 뿐 아니라 재생의 공간이다.
에너지를 충전해주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자신이 소중하게 가꾸고 존중해주는 만큼
자신의 공간도 자신에게 좋은 기운으로 보답해 준다는 것이다.
‘그렇구나’ 라며 탁 무릎을 쳤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하는 말에 공감이 갔고
나의 내면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처럼, 나자신과 나를 둘러싼 집공간 넓게는 환경의
상호작용에 대한 원리가 확실히 이해되는 것 같았다.
‘3년 뒤에는 나자신이 또 얼마나 변해 있을까?’
‘어떤 새로운 일을 또 기획하고 시작할까?’
앞으로도 수많은 탐색과 사색의 과정이
내가 사는 바로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또다른 변화를 겪게 될 내 인생을 상상하니 절로 흥미진진해진다.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변함없이 나를 너그럽게 품어주고 보듬어주는 내 집,
내 공간에 고맙다는 미소의 인사를 보낸다.
"공간님,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꾸벅~ ^^)